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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소년]

학창시절 노무현은 키는 작았지만 할말은 당당히 하는 소년이었다.
옳지못한 일 앞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노풍연가]

노무현이 고시공부중이던 1973년 두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한다. 신혼시절 고시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일을 책임지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해온 아내에 대한 감사와 애정이 노무현의 가슴속에는 자리잡고 있다.

[고시합격과 변호사시절]

1973년 결혼 후 본격적인 고시공부에 나선 노무현은 마침내 1975년, 60명뽑는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짧은 판사시절을 거친 후 변호사 개업을 한 노무현은 회계에 밝은 장점을 살려 대규모 세금 상속사건을 성공시키며 조세전문변호사로 이름을 알려나갔다.

   
   

[돈 잘 버는 변호사와 부림사건]

성공한 변호사 노무현은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새로운 삶의 전환을 맞는다.
이후 재야운동을 하던 노무현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시위현장을 주도하며 6월 항쟁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13대 총선승리 -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1988년 5공주역인 허삼수씨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노무현은 새로운 의정활동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펼쳐나간다.


[늘 첫마음 - 원진레이온 사건현장에서]

노무현이 늘 첫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는 그 때 그 사건, 노무현은 언제나 원진레이온 사건현장에서 만난 노동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어린소녀의 애처로운 눈망울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다.



[청문회스타①]

5공비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청문회
시청자들은 노무현의 증인신문을 보기 위해 때론 일손을 멈췄고 때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노무현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역시 노무현” “속시원하다”는 탄성이 이어졌다.



[다시보는 청문회② -장세동, 정주영, 유찬우]

날카로운 질문과 논리정연한 추궁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국민을 위한 노무현의 뜨거운 가슴이었다.
불신과 불만의 대명사였던 정치권에 그때처럼 격려전화가 쇄도한 적은 없었다.
청문회스타 노무현의 탄생 그것은 분명 우리 정치의 지평을 한차원 높인 사건이었다.



[3당합당 반대]

1990년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3당합당
많은 정치인들은 재선, 3선의 탄탄대로를 따라 약속을, 신뢰를 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민자당으로 들어갈 때 노무현은 외쳤다.
“해체 민자당”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무현은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어떤 선거에서]

1995년, 6.27지방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한 유세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무현은 학벌 때문에 고민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희망의 세상을 말한다.



[조선일보와의 싸움]

과거 군사정권의 시녀에서 권언유착을 지나 마침내 정권만들기까지 힘을 행사하는 거대족벌언론
기득권 세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개혁적인 인물을 철저하게 매장해왔던 그들의 공격은 노무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득권세력의 할말만 하는 신문, 조선일보와 노무현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행정수도이전 공약의 뿌리 - 지방자치실무연구소]

1993년에 노무현이 개설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는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을 세우고 지방시대의 개발전략을 연구하는 연구소였다.
95년 지방선거부터 오늘날 지방시대의 주역이 된 훌륭한 인재들을 수도 없이 배출하는등 명실상부의 본보기로써 “연구하는 연구소”의 모범이 되었다.



[행정가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시절]

해양수산부 장관 8개월, 비록 재임기간은 짧았을지 모르지만 노무현이 해양수산부에 남긴 흔적은 어쩌면 바다보다 넓고 깊었는지 모른다.
낮은 자세로 대화하는 노무현 리더십!
변화의 새시대에 걸맞게 공직사회의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한, 탁월한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다.



[2승3패, 노무현]

1992년 총선 낙선, 1995년 부산시장 낙선, 2000년 총선낙선
쉬운 길,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가야 할 길, 역사가 부르는 길을 선택한 노무현, 그에게 지난 10년은 낙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노무현은 시련속에서 지도자로 거듭났다.
역사와 민족을 생각하는 위대한 결단으로 그가 다시 도전한다.
링컨이 성공했듯 노무현, 그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노무현의 낙선-시사매거진2580]

<바보 노무현>
노무현 의원의 낙선을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이번만은 당선될것이라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인 부산에서만 세번째 떨어졌습니다.
낙선의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정치인 노무현이 지역할거 정치의 벽에 도전한 드문 존재였다는 점에서 다시금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뒤돌아보게 됩니다.



[네티즌이 모였다! 노사모!!]

쉬운 길을 버리고, 지역화합과 대의명분을 위해 부산으로 간 노무현,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뜻과 바보스런 우직함은 네티즌의 마음을 흔들었다.
10대에서부터 70대까지 학생에서부터 아줌마 아저씨..할아버지 할머니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국민경선 - 역사상 첫 국민대통령후보선출]

정당사상 초유의 열린정치 실험이었던, 국민경선.
50일에 걸친 국민경선은 16부작 주말드라마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노무현은 국민경선을 통해 당당히 역사상 첫 국민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우리는 노무현에게서 역사와 미래를 위한 열정을 보았으며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와 함께 모두의 꿈을 이룰 것을 믿고 있다.



[노무현의 희망약속 - Promise 1219 !!]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 당당한 나라 노무현이 만듭니다
정치개혁 국민통합 노무현이 이룹니다

노무현은 다릅니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노무현 후보 프로필, 걸어온 길, 어록(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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