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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동서가 하나되는 길 - 영호남 지역갈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중심으로(2000/11/17)
글쓴이 운영진 날짜 2002-07-11 오전 10:08:00
IP Address 61.73.125.230 조회 /추천 3679/255
* 일시 : 2000년 11월 17일 오후2시-5시
* 장소 :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 후원 : YTN, 경인방송, EBS, 교육신보, 내일신문, 오도신문, 시민의 신문

* 개회사 : 홍사광(동서문화협회 회장)
* 축사 : 이만섭 (국회의장)
* 기조연설 :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 토론사회 : 홍용수 (한양대 겸임교수, 前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1주제 : 동서화합에 있어서 정치문화의 역할

발표자 : 임희섭 (고려대 사회학교수)
토론자 : 김홍신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범구 (민주당 국회의원)

▶ 2주제 : 동서화합에 있어서 기업문화의 역할

발표자 :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 前 전경련 전무)
토론자 : 김영배 (한국경총 상무)
사공수영 (금호그룹 고문)

▶ 3주제 : 동서화합에 있어서 NGO의 역할

발표자 : 서경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장)
토론자 : 심성구 (국민화합운동연대 집행위원장)
이형모 (시민의 신문 대표)
박종화 (제2건국위 기획위원, 경동교회 당회장)


■ 기조연설 전문
노무현-해양수산부장관

저는 지난 수 십년 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 국민의 민주적 정치 역량에 대해서 강한 확신
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오랜 독재의 그늘을 떨쳐내고, 삶 속에서 스스로 주인됨을
확인하며 실천해가는 모습은 세계인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적 정권교
체를 통해 얻어진 자신감은 "이제 권력에 줄서지 않아도 된다"는 기회주의 문화의 극복으로 이어
져 우리 국민의 삶을 더욱 정의롭고 풍요롭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
벨평화상 수상을 우리 국민의 평화와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 평가라고도 보는 것은 단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민주적 역량을 인정받는 우리 국민이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힘겹게 짊어지고
가는 멍에가 하나 있습니다. "지역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악성 바이러스로부터 심하게는 망국
병으로, 혹은 우리 사회 최고의 이데올로기로까지 규정되는 지역주의의 심각성과 폐해를 우리는
그동안의 정치적 경험 속에서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지역주의 때문에 정말 우리나라가 망하지
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지역주의가 우리 국민의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아픈 상처로 남았는지 따져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접어두고자 합니다. 근
본원인을 파헤친다는 분석이 패권적 지역주의니 저항적·방어적 지역주의니 하며 책임을 일방으
로 떠넘기거나 가슴속의 상처를 들추어내어 오히려 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
입니다. 어떤 분석은 지역주의가 너무나 뿌리깊은 것이어서 해소할 수 없는 것이라는 참으로 허
탈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원인분석은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탐색의 과정이어야 함에도 그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도 자칫 얻는 실익보다 손실
이 많을 수도 있는 원인분석을 시도하는 무모함을 범하지는 않겠습니다.

한편으로 일부 사람들은 지역주의를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고, 인간의 자연스런 가정의
표출이며, 애향심의 발로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또 우리의 지역주의가 외국보다는 비폭력적이고 합리적이라고도 합니다. 일면 타당한 지적입니
다. 그러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당연지사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
니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단순히 정서수준을 넘어 우리 정치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
친 말이 아닙니다.

TV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J교수는 "지역주의에 기대기만 하면 강아지나 고양이, 막대기도
당선될 것"이라며 지역주의 정치현실을 신랄하게 꼬집기도 하였습니다. 지역주의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분할구도를 만들고, 모든 정치적 평가를 무력화시킵니다. 정치인은 개인이 가진 도덕적
자세와 역량, 그리고 정책적 노선에 의해 평가받아야 함에도, 그 모든 것은 무시되고 오로지 지
역주의만이 정치적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되고 맙니다.

지역주의가 정책, 이념, 계층, 세대를 구별 없이 삼켜버리는 현실 속에서 정치인의 자질 향상과
이 땅의 정치발전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합니다. 부족한 사람은 걸러내고 좋은 사람은 선발해야
할 선거판은 검증과 여과기능을 잃어버리고 마치 일단의 패거리 싸움터가 된 듯 합니다. 사람간
에 서로 무시하고 차별하며, 판단능력을 흐리게 하여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는 반윤리적이고 비효
율적인 지역주의는 결코 체념하고 넘어갈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들은 이런 의미에서 찬사를 보낼만한 일입니다. 영호
남간의 맞선행사에서부터 연합체육대회, 자매결연을 통한 상호방문과 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화
합의 무드를 조성하려는 다양한 활동들은 결과를 떠나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노력
들이 아니더라도 영호남간의 막역지우(莫逆之友)와 원앙부부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노력의 한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다가도, 정치문제 특히 선거판만 벌어지면 어제 그랬냐는 듯 서로 나뉘어져 대결하는 양상
을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목도하였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얽히고 설킨 곳이 정치분
야라면 결국 푸는 일도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역주의가 만연한 정치를 쇄신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의 하나로 저는 먼저 중선거구제 도입을 제
안하고 싶습니다. 중선거구제는 적어도 한 정당이 특정지역을 독점하는 폐해를 막아주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독일도 한때 극심한 지역주의에 시달렸으나 선거법의 정비를 통하여 이를 극복한 경
험을 갖고 있습니다. 기회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이 중선거구제를 강조했음에도 이루지 못한 것
은 이 점에서 대단히 아쉬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장기적인 과제로서 지방행정구역을 재편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한 일입니다. 몇 해전 지방
행정연구원 등에서 중앙정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읍·면·동의 4단계로 이루어지고 있
는 지방행정체계를 중앙과 광역자치단체의 2단계로 재편하고, 광역자치단체의 수를 50여개로 늘
리자는 안을 내놓은 적도 있었지만, 지방행정구역 재편은 지역주의를 극복함과 아울러 행정의 효
율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검토하여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정치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지역주의를 희석시켜 줄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
도 사람이 변하지 않으며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
해관계를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 창출에 앞장서고, 지역적 경계를 허무
는 일에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적어도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다니면서 이
를 정치적 무기로 쓰려고 하는 일만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역개발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지
고, 이사가 특정지역에 편중되고 있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성이 없진 않지만, 왜곡하고 과장해
서 사실을 호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서로 경쟁하며 정권창출을 위
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보기에도 좋은 일입니다만, 오로지 목적 달성만을 위해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의지하며 그것의 노에가 되어 국민을 분열시키는 씻지 못할 역사적 과오를 범하는 일
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의 제도와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 여느 선진 민주국가들이 그래왔던 것처
럼 독재나 전체주의와 같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사상과
세력에 맞서 때로는 목숨을 건 투쟁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의 의
식구조 한켠에는 불신과 적대가 내재되었고, 비판과 투쟁은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인식되었습니
다. 이제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되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상, 비판과 투쟁을
넘어『관용의 문화』가 지배하고, 대화와 타협이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지역주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요,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관용의 문화』는 상대의 존재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상대의 의견이 정당할 수도 있다
는 전제 하에 대화를 통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며, 양쪽 모두가 나름의 합리성과 타당성
을 가지고 있는 경우 타협으로써 공존의 방도를 찾고자 하는 사고방식과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
나 민주화의 과정 속에 누적된 불신과 적대의 정서는 이러한 관용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
는 것을 어렵고 더디게 만들었고, 그 가운데 지역주의의 악령은 끊임없이 또 다른 대립의 전선
을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영남이 TK니 PK니 하며 서로 반목하고, 도청 하나를 두고 전남이 동부
와 서부로 나뉘어져 치열하게 대결한 것과 모두 지역주의의 확산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
로 얼마나 더 집단 간 또는 지역 간의 분열과 갈등이 있고, 그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정부의 정
책들이 장애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서로 이해하고 껴안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가운데 지역주의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손실과 폐해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
역주의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방관할 수 없으면, 관용의 문화가 꽃피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20세기가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1억 6천만명의 희생자를 낸 불신과 적
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분열과 대결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인류 모
두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 하에 함께 생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이 조그만 국토에 경계를 짓고 지역주의에 얽매여 반목과 질시의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에게 남
는 것은 도태와 상실 속에 세계사에서 잊혀지는 일뿐입니다.

정치인부터 모든 국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대방을 믿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갑시다. 조
금 더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조금 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시다. 그러면서 지
역주의로 멍든 자리를 차곡차곡 관용의 문화로 채워갑시다. 세계가 놀라고 경탄한 고도 경제성장
과 자랑스런 민주화를 이루어낸 우리 국민들이 화해와 포용 속에 하나된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
조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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