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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서문] 왜, 다시, 링컨과 만나야 하는가
글쓴이 노무현 날짜 2001-11-30 오후 5:25:00
IP Address 61.74.111.54 조회 /추천 10498/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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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링컨과 만나야 하는가


누구나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을 말한다. 교과서에도, 이야기책에도 링컨이 나
오고, 세계사 의 위인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 이 또한 링컨이다. 신화가
된 링컨을 내가 처음 만 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위인전을 통 해서였다. 40여
년 전 박성하 선생이 워싱턴과 링컨 에 대해 위인전을 썼는데, 이것을 초등학생과 중학 생 시
절에 읽었다. 링컨을 읽으며 나는 그가 정직하 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생각을
했고, 그 뒤에도 일상적으로 누구나 떠올리는 정도로 링 컨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링컨이 새
롭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정치에 입문 한 뒤였다. 기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
물이 누구냐고 물어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나의 답은
다른 이들 도 흔히 꼽는 것처럼 김구 선생이었다. 김구 선생은 생 을 마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지조를 지킨 지사였 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벗어나기 힘든 운명처 럼 다가온 분단
에 끝까지 맞선 분이 김구 선생 아닌 가. 누구나 존경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 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 - .


나의 정치역정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정치현실에서 나는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나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92년 총선에서도,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당에서도 힘없는 비주류였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물었다.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이 자문의 틈을 자연스레 비집고 올라온 것이 링컨이었다.
역사를 보면 힘 자랑을 하고, 그 넘치는 힘으로 남을 정복하거나 전장에서 승리한 사람은 아주 많다. 징기스칸이 있고 나폴레옹이 있다. 그밖에 문명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대를 건너뛰어 그 사람의 사상과 행동이 과연 본받을 만한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은 누군가. 동서고금을 막론해 인류가 부정할 수 없는 정의의 개념을 내세워 승리하고, 바른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부정하기 힘든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일군 사람. 그래서 인류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사람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두에서 성공한 사람이 링컨이었다. '정의는 항상 패배한다'는 것이 가당찮은 역설에 지나지 않도록 만들면서 진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깨끗이 씻어준 본보기는 김구 선생이 아니라 링컨이었다. 나는 훌륭한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링컨에게서 얻는다. 해방 이후의 한국사는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여러 가지 왜곡된 타협을 강요해왔다. 이상이 현실에 굴복하고 현실이 이상을 구박하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2000년 4월 13일, 선거개표일에 만난 링컨


링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다.
그 동안 링컨에 관한 책을 보면 개인사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진정 링컨의 위대한 면을 발견하려면 그가 처했던 역사적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 서점에 가도 이런 관점에서 쓴 링컨 책은 찾기가 힘들었다.

마침 《미국사 개설(이보형, 일조각, 1993)》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았다. 링컨이 최초의 통나무 집 출신 대통령이자 최초의 서민 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7대 대통령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이 그보다 먼저였다. 링컨 시대가 갖는 의미와 맥락도 깨닫게 되었고, 링컨의 남북전쟁 전후 처리와 화해 계획을 이해하게 됐다. 링컨이 단순한 노예 해방론자가 아니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정치적으로 법이론적으로 링컨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깨우쳤다.

그리고 2000년 4월 13일, 총선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바로 그 날 밤. 간디가 인종 차별주의자에 의해 기차에서 쫓겨나 얼음같이 싸늘한 대기실에서 진리의 순간을 경험한 것처럼,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뜨거운 모랫길에서 극적으로 예수를 만난 것처럼, 나는 링컨과 극적인 재회를 했다. 그날 밤 나는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연설들(월간조선, 2000,4)》이라는 책에 나온 링컨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전쟁을 수행하게 된 링컨은 그 착잡한 심정을 연설 앞머리에 털어놓은 뒤 이렇게 이어나간다.

'……어느 쪽도 남북갈등을 초래한 '원인'이 전쟁 종식의 순간에, 혹은 전쟁 종식 이전에 제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은 모두 승리를 기대했을 뿐 이처럼 근본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초래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양측은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서로 상대방을 응징하는데 신의 도움이 있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남이 흘린 땀으로 자기 빵을 얻는 자들이 감히 정의로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심판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남북 어느 쪽의 기도도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쪽도 신의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더러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안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이 싸움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과 그의 미망인과 고아가 된 그의 아이를 돌보고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


링컨의 두 번째 취임연설문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링컨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이 감동에 휩싸여 사흘 뒤 나는 《시사저널》에 다음과 같은 낙선소감문을 기고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 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 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뒷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4월 13일 링컨과의 충격적 만남 이후 세상이 새롭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링컨의 본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이전에는 조금 뛰어난 정치인 한 사람이 시대의 흐름과 우연히 맞아서 위인이 된 것으로, 난국을 극복한 역량있는 정치인의 하나로 링컨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연설문을 읽으면서 링컨이 단지 좀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고귀하고도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고뇌에 찬 링컨의 웅변은 상극의 정치판을 부끄럽게 한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익숙한 수법을 동원한다. 정치적 공방 속에서 적을 부각시키고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럴수록 자기편을 단결시키기가 쉽고 중간에 있는 사람을 제압하기도 편리하다. 적을 공격하여 승리의 자신감을 불러 넣기에도 유리하다. 편을 갈라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고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하는 것이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링컨도 당시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었다. 보통의 정치참모들은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워 적을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하거나, 승리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강력한 지도력을 세우라고.... 그러나 링컨은 불의와 정의, 승리와 패배 등의 용어를 멀리하려 했다. 남과 북을 똑같은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하고 자기의 고민을 끌어안듯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증오가 아닌 애정을, 내침이 아닌 관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인간의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담담하게 상황을 내려보는 링컨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과 갈등 속에 있는 모순된 인간의 삶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극복하고자 하는 짙은 고뇌가 링컨에게서 배어나옴을 보았다.

옛적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청춘예찬〉이라는 글에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撤還)하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링컨에게서 그런 구도자의 자세를 느꼈다. 링컨은 전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상대를 어떻게 껴안을까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링컨의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미국사 개설》에 나온 전후정책이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연설들》에는 링컨 연설문에 이어 흑인 노예 해방론자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7∼1895)가 링컨 사후 11년 뒤에 행한 연설문이 나온다. 그 자리는 링컨 기념물 봉헌식장이었다. 이 연설문은 들끓는 비판의 무리에 둘러쌓인 링컨의 딱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링컨이 어떻게 연방의 통합과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나갔던가. 링컨의 사면초가는 오히려 그가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현명한 정치인이자, 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정책 집행자였음을 예시하는지도 모른다. 더글러스의 증언을 들어보자.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에이브러햄 링컨보다 더 맹렬한 공격을 받은 위대한 공직자는 별로 없습니다. 그는 가끔 자기 친구의 집에서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기 진영 내부와 외부, 그리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강력하고 신속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노예제도 폐지론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예 소유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절대적 평화주의자로부터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쟁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전쟁을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비난은 그가 전쟁을 노예제도 폐지전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위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라를 분단과 파괴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노예제도라는 대범죄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하나나 두 가지 다 성취하려면, 연방주의자들의 진지한 공감과 강력한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이 같은 성공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이 없었더라면 그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연방을 구하는 것보다 노예제도 폐지를 우선시켰더라면, 강력한 미국민 계층으로부터 유리되어 분리주의자의 반란에 대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순수한 노예제도 폐지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링컨은 느리고, 차갑고, 우둔하고,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입장에서 협의를 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빠르고, 열성적이고, 적극적이고, 단호했습니다.'



링컨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조급한 개혁주의자가 아니었다. 역사의 흐름에 자신의 과업을 맡겨두고 그냥 민심을 따라다니지도 않았다. 링컨은 인간의 가치,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단순한 원칙주의자의 옹졸함도 없었다. 진보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열망이 있었고 한 발 한 발 치밀하게 나아갔다. 그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추구했다.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서 있었으며,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성급히 내닫지 않았다. 링컨은 인간의 이상에 눈을 떼지 않은 인도주의자였다. 동시에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출발하는 전략적 현실주의자였다.

독일의 언론인 테오 좀머(Teo Zommer)는 독일 수상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슈미트(Helmut Schmidt; 1918∼)를 두고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위대함의 징표가 된 것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필연적인 것을 완성한다는 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었다'고 평한 적이 있다. 나는 좀머의 말이 그 누구보다 링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


인간 링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각도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링컨은 출세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릴 적에 신문을 팔고 나무지게를 졌던 사람이 성공하여 칭송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링컨은 정직과 성실로 자기가 맡은 일에서 성과와 신용을 얻었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 만이라면 링컨은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런 사람은 많다. 그에게는 따뜻함이 있었다. 따뜻한 사람이라야 출세한 사람이 우리 이웃이 되고 우리 모두의 행복이 된다.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출세하면 알게 모르게 내 몫을 빼앗아가며 나를 배아프게도 하고 억울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링컨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옳고, 일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다.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통찰력이 있었고, 자기의 가치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연방통합과 노예해방을 위해 전쟁을 치르기로 결단한 것은 이러한 통찰력과 신념에서 나온 용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링컨이 능력 있고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실패와 약점도 많았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23세 때 처음 일리노이 주의원에 도전했으나 패배했고, 재수해서 주의원이 되었다. 36살에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할 때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고, 그 2년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1846년 우여곡절 끝에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임기를 마친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1860년까지 11년 동안의 정치 도전은 모두 실패로 점철된다. 49년 테일러 대통령에게 국토관리청장직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고, 1855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낙선했다. 56년 부통령 후보에 낙선했고, 대통령에 당선되기 2년 전에는 또 다시 연방 상원의원에 낙선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2년 간 연방 하원의원을 한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중앙 정치경력이 없었다. 정치적 실패뿐만 아니었다. 인간적 좌절 또한 큰 아픔이었다. 스물여섯 살에 첫 사랑의 여인과 사별했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40대에 둘째 아들을 잃고, 50대에 셋째 아들을 잃었다. 남북전쟁에서는 처가가 모두 적인 남군에서 활동했고, 처남과 동서가 전사했다.

위인의 약점은 범인의 위안이다. 무슨 말인가. 나는 젊은 시절에 석가모니의 일생을 읽으며 엉뚱한 데서 감동 받았다. 석가모니가 설법 도중에 제자에게 허리가 아파서 눕고 싶다고 한 대목이었다. 그때 와락 다가오는 기쁨 같은 것이 있었다. 장가가는 날을 잡아놓고서도 결혼식장에 나가지 않고 노심초사했던 청년 링컨을 보면서 석가모니를 읽을 때처럼 위안을 느꼈다. 그런 게 인간의 약점을 가진 성자의 모습 아닐까. 거기에서 보통 사람들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링컨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 링컨은 전시중에 매클렐런(George B. McClellan; 1826∼1885) 장군의 막사를 찾아가 2시간이나 기다렸으나 침실로 올라가버린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링컨이 관대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힘없는 대통령 링컨의 모습이었다. 링컨 정권은 강력하지 못했다. 대통령 링컨은 자기가 임명한 장관과 장군의 목을 함부로 칠 수 없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쉼없이 정적들의 강공에 시달리는 정권을 가지고 링컨이 연방통합과 노예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을 보면서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떠올린다. 권력적 수단을 통한 강제력에 있어서는 한없이 허약했지만 결단과 포용을 통해 강력하게 정책 수행 능력을 발휘한 링컨이었다.

지금 한국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젖는다. 전두환식의 권력행사를 강력한 지도력이라 생각하는 사람마저 있다. 그러나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그렇게 권력을 행사할 경우 권력을 쓰려고 하는 순간 정권은 몰락할 것이다. 강력한 지도력은 강권적 지도력이 아니다. 바로 대중의 신뢰와 민주적 절차에 뿌리박은 통합의 지도력이다. 또한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인 지도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력만이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지역 갈등과 계층 대립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고질을 치유할 수 있다.

링컨은 그 시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를 정확히 파악했다. 통찰력을 바탕으로 도전했고,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난관을 돌파했다. 그러면서도 '막강한 권력'에 유혹 당하지 않았다. 대통령 링컨은 겸손한 지도자였다. 겸손한 지도자의 겸손한 권력행사가 분열이 전쟁으로 치달은 미국을 구원했고, 마침내 '강한 나라'를 만들어 냈다.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링컨을 전임 대통령 뷰캐넌(James Buchanan; 1791∼1868)과 비교해서 말한다.

'

'그는 이 나라가 그 위기를 극복해서 번영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해체되어 멸망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막중한 문제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의 전임자는 이미 자위권과 자체보존권을 부정하고, 연방해체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장 미천한 곤충에게도 있는 그런 권리를 부정한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다행하게도, 여러분과 나를 위해 다행하게도, 귀족적인 제임스 뷰캐넌의 판단을 평민 출신의 에이브러햄 링컨은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경 속에서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도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통합의 문을 찾아서

나는 감히 말하겠다. '역경 속에서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링컨이 없었다면 미국의 정치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을 창출한 사람. 그가 곧 링컨이다. 그는 옳은 길을 갔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 길을 가 성공했기에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옳지 못한 길을 가야 하고, 정직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그릇된 관념이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의식, 이러한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한 차원 높은 사회발전도, 역사발전도 불가능하다. 이제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자존심이 활짝 피는 사회,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자 정치를 하는 이유이다.


나는 링컨에 대한 숙제를 풀고 싶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링컨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관련 자료를 모으고, 글을 정리하기로 했다. 올해 봄을 넘기면서 초고가 완성됐다. 가을이 되자 그 글을 더 이상 묵혀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이 남북과 동서로 분열되어 쟁투가 끊이지 않는 오늘의 이 시대는 링컨이 직면했던 시대와도 유사하지 않은가. 링컨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설 수 없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안은 설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내가 '동서간의 지역통합이 없이는 개혁도, 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통합의 문을 통과해야만 개혁도, 발전도 가능하다'고 한 주장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이 책은 나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한 것이다. 글이 비록 부족하고 이런저런 한계가 있더라도 세상에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념한 독자는 이렇다. 정치에 대해 가볍게 논평하는 사람, 정치를 가볍게 생각하고 덤비는 사람, 정치를 대강 대강 하는 사람, 개혁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비평하는 사람, 그리고 정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링컨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다. 정치에 대해 답답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을 만나보라고 진심으로 권한다. 내가 그랬듯이 정치와 역사를 보는 안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음을 밝힌다. 내가 이 책에 기여한 것은 링컨과의 만남과 그 감동적 순간을 공유한 것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나와의 토론을 토대로 링컨의 일생을 정리해준 김대영 씨와 임상헌 씨에게 감사 드린다.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배기찬 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글을 최종적으로 다듬어준 안윤홍균 씨도 고마운 분이다. 마지막으로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과 편집자들에게 감사 드린다. 우 사장은 원고를 읽고 흔쾌히 출판을 허락했으며 학고재 관계자들은 이 책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작품이 되도록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2001년 11월
바람 찬 여의도에서 노무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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