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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99년 2월, 한겨울의 두 가지 풍경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2-04-19 오후 7:47:00
IP Address 211.58.60.2 조회 /추천 12608/255
<b>첫 번째 풍경.</b> <br>
99년 2월,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은 1월 24일 마산 집회, 1월 31일 구미 집회에 이어 7일에 다시 인천에서 장외집회를 가졌다. 마산, 구미 집회에서는 'DJ정부가 경남의 기업만 골라 죽인다', '광주의 OB공장은 돌아가고 구미의 OB공장은 문을 닫았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1년여 후의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영남권의 64석을 싹쓸이했다.<br><br>

<b>두 번째 풍경.</b><br>
99년 2월 9일, 종로구 국회의원인 노무현은 다시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는 경부선 하행선에 몸을 실었다. 정치 1번지를 포기하고 다시 부산·경남에 내려가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16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서 낙선의 고배를 들고 말았다.<br><br>

<b>풍경 이면의 이야기들.</b><br>
98년 7월, 노무현은 한 번 낙선한 경험이 있는 종로구의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로써 그는 6년여에 걸친 고달픈 원외 생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를 반겨준 것은 금배지뿐만이 아니었다. '정치 1번지'로 불릴 만큼 종로의 '물(?)'은 과연 달랐다. '내로라' 하는 재벌들, 신문 지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명사들, 수많은 변호사·공인회계사에 대학교수만도 2천여명에 달했다. 부산 동구에 살 때에는 지역구 전체에 변호사가 노무현 혼자뿐이었고, 자문역으로 공인회계사를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었는데……. 게다가 종로구에는 특별히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지역사업이라는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이제 최고의 지역구를 가진 중진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런데……<br><br>

노무현은 언제나 쫓기는 심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에서 쫓겨나와 피신처에서 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권교체도 이루어진 만큼 이제 정치의 동서구도를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체증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이 영남지방을 오가면서 걸핏하면 장외집회를 열어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있었으니……<br><br>

'영남의 중장비가 모두 호남으로 갔다'<br>
'엘지·삼성을 빅딜의 희생물로 삼고 한국중공업을 팔아넘겨 한나라당의 기반인 경남을 죽이고 있다'<br>
'한일합섬, 대동건설, 한백건설 등 마산사람이 하는 것은 다 망했다.'<br>
'광주의 아시아자동차는 돌아가지만 부산의 삼성자동차는 문을 닫았다.'<br>
한나라당의 영남권 집회에서 쏟아진 이야기들이었다.<br><br>

그 이야기들 앞에서 노무현은 결론을 내렸다.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산행을 선언했다. '이익을 위한 정치'가 아닌 '희생의 정치'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br>
'왜 그러십니까?' '정말입니까?' 총재대행과 사무총장의 반응이었다.<br>
'왜 그렇게 어려운 길로만 가십니까?' 주변 측근들의 이야기였다.<br>
'어떤 속셈이 있는 것 아닌가?', '이종찬 씨에게 지역구를 내주기로 약속?' 아니면 '당의 동진정책', 그런 등등이 언론의 야속한 평가였다. 그나마 제일 나은 편이 '노무현의 승부수'였다. <br><br>

그러한 평가 앞에서 노무현은 다시 절망했다. '그것이 옳은 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소신을 가지고 선택한 것인데, 난데없는 속셈, 힘, 역학관계라니……' 이회창식 정치와 대비시켜 주는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야속하다는 느낌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 쓸쓸했다.<br><br>

어쩔 수 없는 민주당의 불모지였지만 노무현은 다시 농부의 심정으로 밭을 일구어나갔다. 경남지부장을 맡고, 동남특위라는 특별 기구를 만들고 하면서 부산시의 정책을 개발하는 등 활발한 노력을 기울였다. 성과도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던 중에 '옷 로비 사건'이 터졌다.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내려올 때는 부산의 물깊이가 목 정도는 되었는데, 그 후에 '옷 비'가 와서 완전히 물에 빠져죽게 되었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16대 총선을 준비하면서.<br><br>

<b>2000년 4월, 또 하나의 풍경</b><br>
선거운동개시일 전까지의 여론조사들은 최고 18% 정도의 차이로 노무현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끝나고 개표일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만큼은……'하고 말했지만, 결과는 '이번에도'였다. 그러나 그 패배의 순간보다 더 아프게 노무현의 가슴에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선거운동기간 중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있었던 한나라당 후보의 연설 장면이었다.<br>
'여러분, 요즘 살기 힘드시죠? 이전보다 더 사정이 괜찮아지신 분 계십니까? 아, 저기 몇 분 계시군요.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 하하, 농담입니다.'<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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