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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표의 감격... 그리고 눈물이었습니다.
날짜 2002-12-02 조회 2182
* 필자 : 눈물샘

때르릉!...
전화를 받습니다.
작금의 최고의 만화가라는 박봉성씨한테 온 전화입니다.
"신의 아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캠퍼스의 청개구리. 현재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는 마피아캅스...등등 수없이 많은 작품에서 주인공 최강타를 등장시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대만화가의 전화는 내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제야 네가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렇게 짧은 멘트였습니다.

나는 박봉성씨와 함께 만화 작업을 하는 동료입니다.
그분은 부산.
나는 광주... 내게는 한으로 점철된 땅... 하지만 생각하면 목이 매어 나즈막히 불러보는 그리운 광주가 내 고향입니다.
하지만 박봉성씨와 나는 편견이나 지역감정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사랑과 신의만 있을 뿐이지요.
다른 작가들과도 그렇고.

나는 박봉성씨가 찾아와 함께 작업을 하자며 이곳 부산으로 옮기게 하기 전까지는 내가 살아온 터를 떠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남도의 사내입니다.
그곳에서 22년 전의 5월을 보내고 한 때는 애통함으로 몸둘바를 몰라했던,

나는 지난 3월 15일 이른 아침.
당장 해내야 할 신문 연재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채 아무도 모르게 광주를 찾았습니다.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느닷없이 찾아온 나를 마흔을 훌쩍 넘은 세 명의 벗들이 놀라는 얼굴로 쳐다봅니다.
"... 광주가 보고 싶었다... 많이..."

모두들 말없이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수십년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벗들이기에 능히 제 마음을 짐작하고 남았나 봅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망월동을 찾았습니다.
거기에 누워있는 우리들의 대장을 만나기 위해...

80년 5월.
우리 네 사람은 도청앞과 충장로. 금남로. 아시아 자동차... 그리고 담양으로 넘어가는 문흥동 골목골목을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누군가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또 다른 한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친구는 <5월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불러대는 우리 네사람과는 달리 온몸을 불사르는 시민군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
잘생긴 얼굴에 앞장 서서 우리를 이끌어 주던 우리의 대장이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여동생과 함께 홀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던 대장.
...........................

우리가 대장을 찾아낸 곳은 결국 전남도청앞 마당이었습니다.
수많은 시체들 틈에 제 멋대로 누워있는...
온 몸에 피가 난무했지만 우린 대장이 금새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스물 세살이었으니까요.
.............................

하지만 우린.
화순으로 넘어가는 너릿재의 땅을 파고... 우리 손으로 대장을 묻어야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당시의 광주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
우린 또다시 대장의 아버지가 묻힐 땅을 파야 했습니다.
대장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들의 죽음 앞에 그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망월동 대장의 묘 앞에 선 우리.
어느 누구한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흔의 중반에 들어선 살아있는 대장의 부하들.
모두 얼굴을 맞부딪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립니다.
목이 매어 컥컥대기만 할 뿐.

내가 말합니다.
"영남이 대장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잘못된 세상이 팽개친 것일 뿐... 이젠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은가... 불의와 지역감정에 맞서 온 몸을 내던진 대장을 위해서라도 이젠 우리가 가슴에 품고있는 틀을 깨부셔야 하지 않은가... 나,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노무현 후보를 응원하려고 왔다... 그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누구도 단 일말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우린 민주당 대의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모두 꺼져있고 집에서도 모른다는 대답일 뿐.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늘로 솟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우린 일반선거인단에 포함됐다는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광주 외곽 송정리 부근의 임곡이라는 농촌마을에서 비닐하우스를 하는 촌노였습니다.
우리 네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광주를 말했고... 지역감정을 말했고...
..................................

그리고 왜 노무현이여야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우리의 말에 관심이 없다는 듯 계속해서 비닐하우스를 손보는 촌노를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쨌든 강요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다음날.
경선장을 찾았습니다.
노사모 옷을 입은 채 열성적으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런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데...
하지만 한마디 격려의 말도 못하고 슬그머니 그들의 뒤에 섭니다.
마치 다른 일이 있어 지나치려는 사람들처럼...
그때.

우리의 눈에 어느 농약회사의 로고가 붙어있는 모자를 쓴 채 경선장으로 들어서는 촌노를 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늑달같이 달려가 인사를 합니다.
<어르신,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대답도 없이 경선장 입구로 향하는 촌노.
우리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몸을 돌린 촌노가 손짓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아들이 선거인단에 나를 신청하면서 이인제를 지지하라고 했는데... 나는 원래 한화갑이를 찍을려고 했고... 하지만 노무현 이도 괜찮은 것 같으니 한 번 믿고 투표해보지... 걱정 마. 나도 듣는 얘기가 있으니까."
다시 등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에서 우린 진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우리 네사람이 벌어들인 표는 이렇게 단 한표였습니다.
물론 그분의 마음이 다시 바뀌어 다른 후보를 선택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린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분의 한표는 결국 이 땅의 진실이었을 것이라고.

경선장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맨 윗층에 앉아 결과를 지켜 봤습니다.
노사모 옷을 입은 채 쓰레기장으로 변한 경선장을 청소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숨막히는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참으로 땀이 배이는 긴장이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
나와 내 벗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때의 우리에게 시선을 준 사람도 없고 우리의 한표를 알아준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희였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눈에 잔잔한 물기가 흐릅니다.
단상에서 환히 웃고있는 노무현후보.
얼굴이 낮익은 문성근씨. 명계남씨.
그날따라 유달리 잘생기게 보이는 천정배 의원.
큰절로 광주에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치마가 말아 올려질까봐 손으로 스커트를 쓸어 내린 채 황급히 몸을 낮춰 큰절을 하는 노무현 후보의 부인.

경선장 안에 <님을 위한 행진곡>이 퍼집니다.
이 노래는 22년전의 5월에 우리가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인데...

중년을 넘어서는 지금.
나와 내 벗들이 따라 목청껏 불러 댑니다.
모두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광주인이라는 것은 행운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우린 어쩌면 그 순간에서야 우리들의 대장을 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틀 후.
부산에 돌아온 제게 박봉성씨가 벼락같은 화를 냅니다.
작가에게 연재물 펑크는 치명적인 과오이니 당연하겠지요.
심지어 "너는 프로 작가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박봉성씨가 오늘 전화를 해 온 것입니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더욱 고마운 것은 그분도 노무현씨를 지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 3월의 광주였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내가 벌어들인 단 한표를 기꺼이 받아 들일 것이고 그 한표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승리하여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날 거라는 것을...

지금 방송에서 충남의 선거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결과를 노무현 후보의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특히 나한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장이 준 한표가 있는 한 말입니다.

이제 춥고 서럽고...어두웠던 편린들.
대장의 그 절규하며 죽은 듯한 모습도 잊으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노무현 후보가 있을테니까요.

노무현 후보님!
한표의 의미를 잊지 마십시오.
부디 승리 하시어 이땅을 변화 시키시라는 진정어린 한표의 이미를...

물러섬이 없는 용기와 의지로 건승하시기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앙망하며 님을 위해 이곳에서의 제 한표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200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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