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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부른다...
날짜 2002-12-02 조회 996
* 필자 : 무명인

여기 게시판을 드나들며 자주 가슴을 쓸어 내리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참으로 좋은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자고 수시로 게시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와 관련하여 언제 이런 감동을 맛본 적이 있었던지 까마득합니다. 많은 분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고백을 떠올리며 미흡한 저도 심중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 한 자락을 꺼내어 펼쳐보고 싶습니다.

지난 1997년 겨울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밤에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에 사로잡힌 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 몰래 베란다에 서서 어둠에 잠긴 거리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오래오래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고 보릿고개와 산업화시대의 거친 물살을 건너며 겨우 삶을 지탱해오신 분입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저는 아버지가 안방에서 낡은 카세트에 이마를 붙이다시피하며 귀 기울여 뭔가를 듣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카세트의 스피커에서는 거친 잡음과 함께 한 사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의아해하는 저에게 아버지는 은밀한 고백이라도 하듯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김대중이다!"

아마도 김대중의 그 연설 테이프는 수없이 녹음에 녹음을 거듭한 끝에 아버지의 손에까지 닿게 되었을 것입니다. 낡은 테이프 속의 김대중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한없이 깊었던 눈빛과 너무나 경건해 보였던 표정은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던 아버지에게 세상살이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정처 없이 걸어가야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터입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김대중은 길 잃은 밤의 등불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제가 김대중의 얼굴을 보게 되고 다시금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김대중의 연설 테이프를 들었던 때는 그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공식적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김대중에게 끝없이 불행하기만 한 자기 삶의 희망을 위탁했던 것입니다. 갖은 고난을 무릅쓰며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바람에 맞서 펄럭이는 깃발과 같던 그 옛날의 김대중에게 말입니다.

이쯤에서 저의 고향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의 벽지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고향을 떠나서 살아온 날이 훨씬 더 길지만 어린 저의 몸에 아로새겨진 짧은 시간의 흔적은 그 어떤 세월보다도 강한가 봅니다. 그 어린 시절, 저의 몸에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하나 찍혔습니다. 그것은 제가 못 배우고, 무식하고, 게다가 음흉(?)하기까지 한 "전라도 놈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아버지의 피와 땀과 인생을 댓가로 조금은 배울 수 있었고, 무식은 겨우 면하게 되었으며, 남을 해치는 음흉한 짓도 경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결코 "전라도 놈의 아들"임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결혼할 때도, 사회 생활을 할 때도, 사람을 사귈 때도 제 몸에 찍힌 낙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을 시시때때로 절감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제 무릎 위에서 힘없이 손목을 떨구고 세상을 떠난 몇 해 뒤에 그 옛날의 김대중은 뒤늦게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던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찌 눈물 없이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제 눈물의 근거를 "서울 사람의 딸"인 아내가 어찌 미루어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악마의 속삭임 같은 지역주의의 논리와 선동은 그칠 줄 몰랐고, 오히려 더욱 치밀하고 노골적으로 울려 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김대중에게 위탁했던 희망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아득한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속수무책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보다는 좀더 멀리 볼 줄 아는 인간입니다. 비유하자면 저는 난쟁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던 아버지의 어깨를 올라타고 앉은 난쟁이입니다.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탄 덕분에 저는 조금은 더 멀리 보고 넓게 살필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와는 달리 아무런 유보도 없이 김대중이 저의 등불이거나 깃발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저는 현실에서 저의 등불이나 깃발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다만 일상의 알량한 안정과 소소한 경력만을 돌보는 근시안의 생활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노무현의 힘과 가치를 새삼스럽게 재발견하게 되기까지는 말입니다.

작년 가을의 어느 날 제가 직장의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을 때였습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좋겠느냐는 얘기로 화제가 흘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밥맛 떨어지게 웬 정치 얘기냐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인제라는 사람이 거론되었고, 이회창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모처럼 하루 잘 쉬게 되겠다", "차라리 **당을 찍겠다"는 등의 냉소적인 말이 오고갔습니다. 그 때 누군가 무심결에 내뱉은 한숨처럼 "노무현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노무현! 제가 왜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독재자의 면상을 향해 국회의원의 명패를 집어던지고, 파업 현장에서 불같은 목소리로 정의를 외치고, 3당 합당이라는 지역주의적 야합에 맞서 외롭게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정치적 원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거듭 바보가 되었던 바로 그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말입니다.

저는 그 날 "노무현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던 동료의 얼굴에서 언뜻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없이 깊은 눈빛으로 김대중의 연설 테이프를 듣던 아버지의 얼굴을 말입니다. 그 날 이후로 저도 그 동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아니, "우리에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제 고향 전북...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고 어머니가 홀로 눈뜨고 계신 그곳을 어찌 옷깃을 여미지 않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이제 여기에 없고, 저는 아버지의 시간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옛날 "전라도 놈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그 누가 찍었을지라도 이제는 그것을 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을 위해 "전라도 놈의 아들"은 "경상도 놈의 아들"인 노무현을 선택하였습니다. 지역주의라는 악마의 속삭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노무현을 저의 등불이고 깃발로 삼을 것입니다. 노무현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주말마다 울려퍼졌던 노무현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오늘 제 고향 전북에서는 저와 같은 수많은 "전라도 놈의 아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불러줄 것을 믿습니다.


(200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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