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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는 사람, 노무현이 되어 주십시오!
날짜 2002-12-02 조회 986
* 필자 : 가난한마음

87년 저는 고3이었습니다. 산등성이를 끼고 대학교가 옆에 있었던 우리 학교는 최루탄 가스냄새가 언제나 흘러왔습니다. 87년의 봄. 그때도 여전히 검은색 후추가루차와 하얀색 지랄탄의 잔해가 스멀스멀 흘러들어 왔습니다. 전두환의 유일한 업적(?)이라는 과외금지 덕택에 학교에 남아서 타율학습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최루탄 가루가 날리면 참 즐거워했습니다. 그걸로 자율학습은 끝이었으니까요.

87년 6월 말. 학교앞 식당에서 라면 하나 시켜 놓고 도시락을 까먹는데, 우리 할머니 가라사대 "귀가 잘 생겼다"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나와서 무슨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세상은 그 이전부터 난리가 났었습니다. 서울역에 시위대 10만, 뭐 이런 기사들을 보며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옆에 있던 대학교의 영향으로 광주에서 그 정권이 저질렀던 만행을 찍은 사진들을 이미 보았던 저는, 그 날 6월 29일 뭔지는 잘 모르지만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희 부모님이 말다툼을 하셨습니다. DJ를 찍어야 한다는 아버지와 YS를 지지하는 어머니의 의견충돌이었습니다. 왜 하나만 나오지 서로 나온다고, 그것도 불출마선언이니 마음을 비웠느니 하면서 싸움박질을 해서 단란한 가정마저 시끄럽게 만드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부모님 두 분 모두의 패배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의미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건 부모님 두 분만의 패배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패배였다는 것을.

제 아버지는 그 패배의 결과로 DJ에게서 마음이 떠나셨습니다. 한마디로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대중씨의 정계은퇴 복귀를 시점으로 안티 DJ가 되셨습니다. 논리 위에 심리가 있다는 것을 이런 것을 통해 알게 됩니다. 사람은 싫은 것보다 옳지 못한 것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의 마음도 갈라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것도 어떤 당파성이 아니라 지역에 따른 철저한 반목으로 말이지요.

친가와 외가가 모두 서울이고 나서부터 서울에서 줄곳 자란 저는 지역감정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다만 백기완씨 지지하던 서울 토박이 후배 하나가 대구에서 군생활을 하고 와서 망할 지역감정 없애야 한다면서 DJ 지지하러 다니길래 좀 의아해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 일년 반 정도 일본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연히 경상도 분들(태어나서 대학원 졸업까지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이 많았는데 그 분들과 생활을 하면서 저는 정말 너무 놀랐습니다. 그 분들은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 문제에만 들어가면 DJ가 경상도를 다 죽이고 있고 전라도에 가면 부산차는 기름도 안 넣어준다는 둥, 정말 글로만 보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분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대체 어디서 이런 간극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게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역감정이라는, 정말 망국의 근원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92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이나 그 이전의 국민회의를 지지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3당 합당 이후 꼬마민주당을 지지하기도 했고 김대중씨 은퇴 이후에는 좀 새 사람들로 나라가 바뀌기를 바라며 소위 진보정당을 찍었습니다. 97년에도, 지난 4.13총선에도 그랬습니다. 그게 무슨 제 의식이나 행동이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뭔가 정치가 획기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4.13 총선 날 저녁. 대학 동창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모임 시간은 오후 6시. 집에 딱 들어서니 출구 조사를 발표하더군요. 우리 동네에선 제 한 표 덕분에 민주노동당이 13%나 득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우리에겐 노무현 낙선! 그게 가장 큰 뉴스였습니다. 부산 출신의 제 친구는 쪽팔리다고 텔레비전 꺼버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정말 노무현씨는 또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좀 올바른 길로 타협하지 않고 가보려는 한 사람을 우리 사회는 또 그렇게 무참히 밟아버렸습니다. 그게 너무 열받아서 그 이후 아무 생각없이 노사모라는 데에 가입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노사모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노사모 회장 뽑을 때 한 표 행사한 것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는 희망은 그게 아닙니다. 그래도 그렇게 바보처럼 미련하게 한 길을 가려는 사람을 지켜주려는 정말 평범한 민초들의 모습에서 저는 오히려 희망을 봅니다.

청문회라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에 스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중 스타라는 것이 한낮 뜬구름과 같은 인기를 바탕으로 하듯이 그 때 날렸던 사람 중에 지금까지 계속 살아남아 있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들 뇌리에 잊혀지지 않고 있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라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대게 청문회 스타들은 계속 잘 나가다가 고꾸라졌는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정말 바보처럼 그 인기를 유지할 생각은 없이 명분과 대의만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떨어지고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고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길이 옳다는 것을 말입니다.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1등을 하는 날. 정말 회사 연구실 한 구석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남의 일가지고 그렇게 울었을까요. 그건 그토록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는 첫 삽을 광주시민들이 떴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삽! 그렇습니다. 그 첫 삽을 저는,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은 애타게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강원에서 경남에서 전북에서 온 국민들이 삽을 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내민 손을 모두 부여잡고 있습니다. 4.19와 부마항쟁으로 민주주의의 큰 길을 열었던 분들이 그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 옳은 길을 가는 한사람의 발걸음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민주당이라면 이를 가시는 우리 아버지. 지난번에 아버지께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더니 허허 웃고 마십니다. 예전에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DJ가 노무현에게 후보를 줄 리가 없다고 큰소리 치시던 분이 이제는 조금 바뀌셨습니다. 올해 경로우대증을 받으시기까지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어지다 못해 이젠 쇠약해지신 그 분이, 뭐가 좋다고 언제나 있는 사람만을 편드는 사람을 지지하겠습니까. 이제 아버지의 맘속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벌써 허물어지셨습니다. 늘그막에는 아들이 가는 길을 따라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하고 계십니다.^^

제가 노무현 후보에게 바라는 것은 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는 이제 경제인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사회, 문화, 이런 것은 그네들에게 맡겨 놓으면 더 잘할 겁니다. 정부가 뭐 만능이 아닙니다. 그냥 적절하고 공정한 심판 노릇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의를 향해 옳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지역감정으로 굳게 쌓아 올려진 사람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아예 다 녹여버리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동서를 하나로 만들고 남북이 하나가 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것만 하셔도 노무현님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분이 될 겁니다. 나쁜 사람들도 역사에는 남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남기는 어렵습니다. 님은 꼭 우리 가슴에 남는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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