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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문화세대의 정치적 선택
날짜 2002-12-02 조회 1249
* 필자 : 컬티즌

주말 정치드라마 민주당 국민경선은 좌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블록버스트 미니시리즈로 돌풍을 일으켰다. 피 흘림 없이 일군 광주의 "명예혁명"은 지역주의가 깨질 수도 있다는 신선한 충격 속에 전체 판도의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했고, 순식간에 대세론 주자들의 백일몽을 박살낸 다크호스 노무현 고문(이하 직함 생략)은 청문회 이후 14년만에 다시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그 대가로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 수구 연합 최대의 적으로 부상했지만, 노무현은 오랫동안 왕따당해온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조금의 꿀림도 없이 배팅하고 있다. 변화라면, 이제 그는 가장 강력한 패를 쥔 주인공이며, 아무도 그를 무시 못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관람객의 예측을 뒤엎은 노무현 신드롬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유권자의 절반을 사로잡는 폭발력은 표면적 정치 패러다임으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그의 잠재력은 어쩌면 다른 정치인에게는 적용하기 힘든 세대론에서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의 지지층은 30대가 압도적이며 20대 40대가 뒤를 잇는데, 50대인 노무현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386세대와 닮음꼴 행로를 밟아왔다. 신군부의 고문으로 훼손된 80년대 학번들의 신체는 70년대까지 그저 의기양양했던 상고출신 사시합격자의 양심을 강타했고, 그들로부터 압수된 책들은 잘나가던 변호사의 지성을 "의식화"시켰다. 이후 인권변호사와 재야운동가로 학생과 노동자의 동지가 된 그는 87년의 희망이 불발로 끝나던 무렵까지 "아스팔트" 시절을 감내했다. 김영삼의 후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88년은 장세동 정주영 등 비리 거물들을 꼼짝못하게 한 초선의원 노무현을 전국에 알렸지만, 그것으로 짧은 영광은 끝이었다.

90년대 벽두부터 노무현의 수난시대를 예고한 3당 합당은 그의 정치적 후견인이 권력 의지로 저지른 "안온한 불의"였다. 그 야합의 순간 발악하며 혼자 이의를 제기한 노무현의 "험난한 정의"를 주변에선 뜯어말렸고, 이렇게 수구의 비위를 거스를 무렵 조선일보의 더럽고 치사한 "노무현 죽이기"가 시작되었다(그의 적들은 10년째 똑같은 레퍼토리를 우려먹는다). 이후 "묻지마" 지역감정과 친YS-반DJ 정서가 망령처럼 지배한 네 번의 선거는 줄곧 고향에서 버림받는 기구한 운명을 그에게 선사했다. 당내 요직에도 올랐지만 90년대는 노무현에게 패배의 연대기였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다"는 명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자들은 5공 실세와 함량 미달의 지주를 뽑느라 진짜 농부를 내팽개친 밭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90년대는 운동권의 시련기였다. 동구권 붕괴와 이념의 퇴조 속에 학내 주류를 장악한 신세대는 이상 대신 일상으로 눈을 돌렸다. 전자의 억압성을 후자의 다양성으로 해체하고 탈주하는 작업은 시대정신처럼 활개쳤다. 기껏 후일담으로 포장된 80년대는 90년대 학번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되지 못했다. 3당 야합에 따른 민주/반민주 구도의 와해와 형식적 민주화의 진척은 모순적 상호작용 속에 정치 무관심을 이끌었고, 여전히 이니셜과 파벌이 난무하는 "노땅" 보스 중심의 조폭적 지역정당은 정치 냉소를 부채질했다. 신세대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올바름보다 문화적 세련됨을 향했다. 80년대는 살벌하고 퀴퀴하고 촌스러운 고물처럼 사라져갔다. 그나마 386은 신세대적 마케팅에 적응하며 중산층 화이트컬러로 흡수되었지만, 진보 세력과 노무현의 주가는 동반 하락의 연속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의 대비는 결국 20대의 편향에서 비롯한다. 80년대는 냉전적 현실에 항거한 뜨거움의 시대였다. 젊음은 변혁의 역사 중심에 있다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투신했다. 그 거대한 거울이 엉겁결에 도래한 문민과 문화의 온풍으로 균열되자, 역으로 공동체적 열망은 개인적 쿨함으로 바뀌었다. 현실 개조가 불가능하다면 현실과 어떻게 거리를 두며(강한 나) 행복의 접점을 찾을 것인가(아름다운 나). 여기서 싹튼 개인적 나르시시즘은 대중문화와 섹스, 자본주의로 파편화된 소비사회의 감수성이자 처세술이었다. 문화적 관점에서, 80년대는 차가운 현실에 맞선 경직된 이론과 뜨거운 가슴을 담은 서정적 시의 시대였다. 반면 90년대는 다원화된 현실을 담은 유연한 담론과 쿨한 태도를 견지한 서사적 소설의 시대였다. 이를 교차편집하자면, 경직된 서정성과 유연한 서사성의 대조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극으로 보이던 80년대성과 90년대성도 밀레니엄 전환기 전후로 일종의 변증법적 접속을 시도한다. 접속의 장은 인터넷이다. 이 완전 평등의 가상 공간은 현실 공간을 모방하면서 전복하는 데 거의 아무런 태클도 받지 않는다. 정치세대는 정치세대대로 문화세대는 문화세대대로, 거점을 만들고 탈주를 시도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이룬 것이다. 그런 만큼 정치와 문화는 스미고 짜이면서 현실 정치에 대한 지난 시대의 뻣뻣함과 시니컬함을 극복할 여지를 확보한다. 특히 대안 매체들은 문화의 정치성과 정치문화를 "따로 또 같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했다. 안티조선, 오마이뉴스 등은 극우와 수구를 보수인양 전파하는 족벌언론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고, 딴지일보 식의 "언론플레이"는 정치와 문화를 갖고 "노는" 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정치는 문화만큼 가벼워지고, 문화는 정치만큼 무거워진다.

정치가 대중문화처럼 쉽게 클릭할 수 있는 접근성을 얻게 되자, 땅따먹기가 말아먹는 정치판의 몰상식과 무원칙에 염증을 느껴온 대중은 굳이 진보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의 등장은 그 잠재적 갈증을 가시적 희망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운동권의 계보에만 속한 "색깔"이 아니라 양심 있는 상식인 모두의 "열망"이다. 노무현은 말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건 논리가 아니고 직관으로 하는 겁니다. 경선 주자들 가운데 그런 영감이 가장 풍부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광주대첩"이 수많은 이들의 눈물샘까지 건드린 건 그의 장담이 "음모"가 아님을 증명한다. "뭔가 변화를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 사람들은 바로 그 파토스에 빨려드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이나 혁명처럼 사람들이 그것에 도취되고 한 몸이 되기를 바라는 서정성이 깔려있다. 머리 속을 배회하는 이상적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유착(노무현 홈페이지에는 "요즘 당신 때문에 손에 일이 안 잡힌다"는 행복한 고백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상상계"로 정신분석될 수 있다. 노무현은 정치적 상상계를 복원한 셈이다.

서정성 담긴 정치적 상상계는 특히 386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며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걷어내고 있다. 이를 80년대로의 퇴행으로, "길거리 급진주의"의 부활로 매도하는 건 파쇼적 저열함에 불과하다.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세련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노무현의 겸손한 자랑은 경직된 이상주의를 떨쳐낸다.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혀 "정치인 DB" 개발을 이끌고, 딸과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관람하며, 민주화 투쟁 중에도 가끔 대학 동호회팀과 (골프세트보다 싸다는) 요트를 타곤 했다는 정치인은 심지어 쿨한 것 아닌가. "그놈이 그놈"이 아님을 보여주며 20대의 투표율을 높일 후보는 노무현밖에 없다. 90년대의 반작용을 탄력적으로 극복하면서 그 개방성을 폭넓게 수용하리라 기대할만한 유일 후보인 것이다.

이런 유연성은 노무현을 연예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치인 최초 팬클럽 "노사모"로 이어진다(이들을 사이버 광신도 취급하는 정치인은 자기에겐 왜 팬클럽이 없는 지부터 반성할 일이다). 전국 규모의 노사모는 "우리가 남이가"의 참뜻을 실천하며 돈과 조직 대신 자원봉사와 네트워크로 한국 정치사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노사모 주최 명계남-문성근의 강연 제목 "정치야 놀자"는 내용을 떠나 정치문화를 대중문화로 포섭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암시한다. 정치는 함께 만드는 이벤트이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유희이며, 역전 가능한 스포츠 게임이 된다. 대중은 정치인에게 별점을 매기고 팬레터를 보내며 비평문을 작성한다. 정치는 정치문화가 결정하며 정치문화는 정치세대와 문화세대를 아우르는 정치문화세대가 결정할 것이다. 이들의 앙가주망은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근대적 경직성을 해체하면서, 지방자치적 리좀에 의한 탈근대적 유연성을 실험한다. 80년대 정치세대의 경직된 서정성과 90년대 문화세대의 유연한 서사성은 2000년대 정치문화세대의 유연한 서정성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감염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의 적들은 그저 서민적 이미지의 광풍으로 치부하고 싶겠지만 노무현의 고민 아닌 고민은 되려 상위 중산층의 지지가 더 크다는 점이다. 이는 386중심의 소위 배운 사람들이 여론 주도층으로 성장하면서 빚어진 결과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감동정치"를 환영하면서도 그 파토스 이면의 일관된 로고스를 잊지 않는다. 그는 "모호하고 매력도 없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오늘날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합리주의"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미완인 정치적 근대성의 뿌리내리기를 위해 그가 걸어온 외길은 이성적 상식을 벗어난 게 아니었다. "CEO에게 패배자라는 건 무의미한 것이지만 정치가에게는 패배자야말로 중요합니다. 정치가는 패배자들을 챙겨서 함께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신념을 극좌로 내모는 발상은 극우일 뿐이다.

더욱 빛나는 것은 어느 정치 계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노무현만의 에토스이다. 강준만도 지적한 "국민 사기극"의 일면을 보자. "정치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더군요. 국민들은 반칙을 하지 말라고 질책하면서도 반칙을 해서라도 이긴 사람에게 환호를 보내지, 깨끗하더라도 진 사람은 잊어버리거든요." 그러나 노무현은 국민적 기만에 원한을 품기보다 원칙과 미래를 긍정하고 또 긍정했다. 이 "아름다운 바보"가 일깨운 정치적 올바름과 부끄러움에 대해 이젠 국민이 그 빚을 갚을 때가 됐다. 이것이 진정한 "보은론" 아닐까. 그래야만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막상 개혁 인사가 등장하면 가볍고 튄다는 따위의 트집을 잡고는 보수주의로 도망치는 전근대적 사기극도 막을 내릴 것이다. 진짜 사기극은 지역을 볼모로 보수가 다수라고 못박는 기득권자들의 궤변일 뿐임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노무현이라고 모두에게 완벽한 대통령 감은 아니다. "아무 이해관계 없어도 노무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거북스러운 사람도 있다"는 건 그의 장점을 부각하지만, 그만큼 그에 대해 비호의적인 현실을 엿보게 한다. 조선일보 인터뷰 사절과 같은 그의 당당함은 이미 거대 언론의 눈총을 맞고있다. 그의 학벌은 국민들에겐 신화가 될지언정 정치판에선 가난한 인맥의 증거일 뿐이다. 그의 노선을 매카시즘적으로 마녀사냥하는 우파가 있는가 하면, 비판적 지지도 보내기 힘들다는 좌파가 있다. 전자에게 노무현은 너무 불안하며, 후자에게 노무현은 너무 나약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델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처였다"고 비꼰 르몽드를 인용하는 일부 좌파는 노무현도 결국 제도권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노무현은 명문대 출신 386 의원들보다 더 아웃사이더적이면서 더 386적이다. 재야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주눅들지 않고 제도권의 변화를 위해 사용해왔던 것이다. 언더와 오버를 줄타기하며 인디적으로 밀고나간 독특한 정체성은 또한 90년대 신세대의 기수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비록 제도권 내라 해도 그 변화의 크기와 파장을 추측컨대, 노무현은 정치판의 서태지가 될지도 모른다. "10대의 대통령"은 문화뿐 아니라 문화정치를 개척했고 "노짱"은 정치뿐 아니라 정치문화를 개혁할 것이다. 두 사람은 학력이나 언론에의 태도, 단기필마의 투지, 새로운 창조의 비전 등에서도 공통점이 많다(노사모가 서기회와 손잡으면 서태지 팬들의 표를 확보하리라는 우스개도 있다. 안티서태지의 표를 잃을 거라는 우려와 함께).

무엇보다 "노무현이 당선된다는 사실 하나가 이미 당선하고 나서 할 많은 일보다 더 크다." 그의 당선은 학연 지연의 전근대성이 상식과 합리의 근대성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면서, 올곧은 꿈은 결국 실현된다는 희망을 살려낼 것이다. 더불어 정치 구도 전체를 조금 왼쪽으로 옮김으로써 야당도 극우를 떨궈내어 건전 보수의 길로 들어서고, 진보당도 활로를 개척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여론조사도 증명하듯, 노무현의 당선이 우리나라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이회창이 될 거라 믿는 건 사기다. 가장 바람직한 걸 이루어야 한다.

그 동안 정치적 무관심에 떳떳했거나 선거 기권을 쿨한 태도인양 여긴 문화세대라면 이제 조금은 다른 선택을 마주할지 모르겠다. 정치적 근대성도 못 이룬 채 문화적 탈근대성을 도입한 게 우리 현실이지만, 그런 괴리의 위험성은 조선일보의 진보적(?) 문화면이 극우보수의 경제적 기반에 일조하는 현실로도 잘 나타난다.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교실이데아"에서 내지른 서태지의 이 절규는 근대성의 촉구를 탈근대적 문화형식으로 고민한 흔적이며, 문화적 진보를 가로막는 보수적 제도와 관념에 대한 국민 사기극의 고발이다. 정치적 진보의 베이스 위에서야 문화적 진보의 참된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이라는 정치문화적 기호sign는 유권자의 문화정치적 기호preference가 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경선을 치르는 지방마다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지지를 표하고, 특히 386의 문화적 선택이었던 영화판을 축으로 수많은 문화예술인도 성명서를 발표하는 이즈음, 20대 중심의 문화세대는 탈근대적 정치문화에 힘입어 정치의 근대성에 한 표 던질 찬스를 맞이한 셈이다. 이 한 표가 결국 문화정치의 진보와 문화 전반의 자유를 위한 한 표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젠 정치적 세련됨과 문화적 올바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시점이다.

* 인용문은 모두 노무현 입문서로 "딱"인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행복한책읽기, 2002)에서 뽑았다. 일련의 노무현 관련서는 "노풍"의 근거를 잘 보여준다.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인물과사상사, 2001), 이태준의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월간말, 2001), 장신기의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거름, 2002) 등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 예언서들이다.

(200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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