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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돌풍의 의미"-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란의 바람
날짜 2002-12-02 조회 1324
* 필자 : 세종연구소 국제관계 연구위원 이상현


김대중 때와 달리 왜 그들은 ‘노무현 돌풍’에 침묵을 지키고 있나


뉴욕에서 살고 있어서 한국 사정에 밝지 못한 필자로서는 노무현 돌풍에 대해 다소 당혹감을 갖고 있다. 인터넷의 자료들을 뒤지면서 당혹감은 더욱 심해졌는데 왜냐하면 예상 외로 노무현 돌풍의 의미에 대한 지식인들의 글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교체의 효과에 대해 천진난만한 기대를 품었던 분들이 이번에는 왜 그토록 미적지근할까?


필자가 보기에 노무현 돌풍은 한국 주류 양당 구도의 한 축을 형성하는 민주당이 전근대적 민주 정치에서 일반 민주주의를 완성해가는 현대적 민주 정치로 이행해나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인데도 말이다.



김대중 정권의 기괴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부조화


김대중 정권에 대해 한때 과도한 기대를 가졌던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 13호에서 정치 패러다임을 바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김대중 정권의 구태의연함에 실망감을 토로하면서 이를 ‘인간 김대중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지나치게 인색한 평가이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는 ‘국민과의 토론’처럼 캠페인 기법을 일상적 국정운용에 활용한다든지, ‘제3의 길’ 정책 등의 도입을 통해 ‘현대적’ 정치 활동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의 기본 하드웨어 자체가 전 근대적이어서 이러한 현대적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이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기괴한 부조화를 이룬 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치 연합, 국가 보안법 등의 일제 식민지 잔재의 존속, 대중 경제론의 폐기와 재벌 체제의 묵인으로의 노선 수정, 봉건적 가신 정치, 가부장적 훈시에 기초한 통치 스타일등은 비판적 지지론자들의 신화와는 달리 김대중 정부의 기본 하드웨어가 일반 민주주의의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드웨어 기반 위에서 진행된 영국의 기든즈가 주창한 ‘제3의 길’이나 ‘국민과의 토론’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봉건과 21세기가 기괴하게 결합된 그야말로 포스트모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 최초의 텔레비젼 정치에서 보여준 촌스럽고 어색함은 늙고 완고한 모습의 김대중 대통령에 비하면 준수한 편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엘리트 그룹의 무능함이 노무현 돌풍의 1등 공신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나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돌풍의 배후로 소위 ‘김심’을 의심하고 있다.(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의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야말로 노 무현 돌풍의 일등공신이다. 그것은 이들의 주장처럼 김대중 대통령이 음험하게 뒤에서 조종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일반 민주주의 과제조차 실현하지 못한 그의 무능이 2002년이라는 뒤늦은 시기에 노무현 후보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대중 주필은 자신의 후보인 이회창 총재의 무능이야말로 노무현 돌풍의 또다른 1등공신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지금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구여권이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낸 적이 없다.

흔히 사람들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들이 주로 폭압에 기초해서 무식하게 지배해 온 줄 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정희 정권은 두말할 나위없고 6.29 선언의 주역이 바로 강경파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도로 이루어 졌으며, 광주학살로 피묻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보통 사람’으로 바꾼 캠페인은 미국 컨설턴트들이 개입한 현대적 선거 캠페인의 극치였다.


그의 오만함


하지만 보수적 법관 특유의 오만함과 초반 우세에 안주한 이회창 후보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예비 경선 등 을 주도하기는커녕 가신 정치에 안주해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인제 후보는 김대중 주필의 ‘김심론’을 맹목적으로 전파하고, 일반 민주주의의 완성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에 머무르는 노무현 후보를 마치 좌파 후보인 양 연일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이러한 구시대적 정치 행태가 궁극적으로는 노무현 돌풍에 역설적이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재야 입당파의 상징인 김근태 의원의 좌절은 이들과는 다른 형태로 긍정적으로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 기여하였다. 그의 부패한 정치권에 대한 고발과 개혁의 필요성은 노무현 후보에게 바람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퇴의 의미는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는 그의 중도 사퇴는 재야 입당파의 실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원칙과 진정성이라는 점에서 그는 노무현 후보보다 훨씬 더 일관된 정치 역정을 살아왔다. 지금은 대부분 잊었지만 노무현 돌풍의 결정적 판을 만들어 준 예비경선제는 바로 김근태 의원이 줄곧 주창해왔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를 외면했다. 마치 80년 군사독재 세력을 몰아내자마자 국민들이 재야 운동세력을 차갑게 외면했듯이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 후보와 달리 대중과 의사소통에 능해야 하는 현대적 대중 정치 활동에 적응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실험


지난 시대의 틀에 여전히 사로잡힌 이들과 달리 노무현 후보의 현 실험은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이회창 총재, 이인제 후보와 달리 일반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오랬동안 지연되어 온 초보적 과제를 비로소 전면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다. 그는 한 편으로 여야가 수십년간 안주해온 지역주의의 틀을 깨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 보안법, 재벌, 언론, 호주제 등에서 미루어온 과제를 정면에서 돌파할 것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현대적 정치 활동을 몸으로 체현하고 있다. 예를들어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등에서 보인 모습은 가부장적인 리더십이 아닌 민주적 스타일을 체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캠페인 과정에서도 그는 가신 정치 대신 인터넷을 통한 열린 소통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동영 후보와 더불어 텔레비젼 정치를 이해하는 최초의 대권 후보임을 보여준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2002년의 시점에서 21세기의 방식을 가지고 과거 87년 선거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DJ의 부활인 셈이다.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만약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그의 시련은 그때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는 단지 언론에서 이야기하듯이 그에 대한 갖가지 검증작업이 시작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2002년의 상황이 가지는 복잡성이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이다.

우선 노무현 후보에 대한 두가지 모순된 기대에 어떻게 그가 부응해나갈 것이냐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다시 말해 현재 그에 대한 기대는 한편으로 보다 더 개혁을 철저히 추구할 것을 갈망하는 서민들의 진보적 열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남정권’에 소외감을 느낀 지역 주민의 기득권 고수의 보수적 열망의 혼합이다.

그가 이 두 가지의 모순된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한나라당의 공세에 말려들 수가 있다. 또한 그는 단지 과거로부터 지연된 일반 민주주의의 실현을 넘어서서 2002년의 시점에서 어떤 종류의 미래 지향성을 보다 분명히 해나갈 것인가를 요구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지속이냐 아니면 보다 진보적인 노선을 채택할 것인가에 따라서 그의 캠페인 방향뿐 아니라 이후의 집권후의 운명까지도 좌우 할 것이다. 노무현 후보의 극히 실용주의적 스타일만 고려한다면 제3의 길과 결과적으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 2002년의 시점에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며칠 전 텔레비젼 화면에 비쳐진 노무현 후보와 문성근, 명계남같은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 기분이었다. 사실 노무현 후보는 ‘친구’나 ‘박하사탕’ 같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며 감상을 자극했던 미완의 과거를 2002년의 우리 앞에 현실로 불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시작하지 않겠냐고 지극히 단순하게 묻고 있다. 그의 별명답게 너무도 바보스러운 질문 앞에 2002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단순하지 않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200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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