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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풍’의 사회문화적 분석/홍성태
날짜 2002-12-02 조회 1031
* 필자 : 홍성태

1. ‘노풍’이 불어온 곳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는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 변화였다. 그것은 오랜 독재를 통해 불구가 되어 버린 우리의 대의제를 바로잡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의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정당의 구성과 후보의 선출부터 국민의 뜻을 모아 이루어져야 한다. 독재는 이러한 대의제의 기본원리를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짓밟아 뭉개버렸다. 대신에 ‘패거리 정치’라는 사이비 대의제가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게 되었다. 이것은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두목이 부하들을 줄 세우고, ‘선출’이라는 이름으로 부하들이 두목을 추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사이비 대의제에는 두목과 부하만 있을 뿐, 주권자인 국민은 없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는 두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두목과 부하만이 있는 한국의 사이비 대의제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명실상부한 대의제로 바뀌는 길을 열었다. 민주화는 ‘문민정부’나 ‘정권교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제도가 바뀌지 않고,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권력의 변화는 그냥 권력의 변화일 뿐이다. 둘째, 국민의 참여를 강화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크게 높였다. ‘패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만연시켜서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패거리 정치’의 재생산이다.

‘노풍’은 어디서 불어왔는가? 그 직접적 기원지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다. 그리고 민주당의 국민경선제가 거둔 최대 성과는 노무현 후보의 선출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공고화가 이루어지자, 그에 걸맞는 정치적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제도의 민주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노풍’은 아주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노풍’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불어온 곳에 관심을 갖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하다. 제도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노풍’은 잘 보여준다.

국민경선제가 ‘노풍’의 직접적 기원지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노풍’의 성격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사실 오랜 독재를 통해 굳어진 ‘패거리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만큼 ‘패거리 정치’에 대한 혐오감은 깊고 넓다. 다시 말해서 ‘패거리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노풍’의 진정한 진원지는 바로 이러한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다. 이런 점에서 ‘노풍’은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 열망의 가장 깊은 곳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이 사회의 틀을 바꾸어 놓은 구조적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세대론으로 설명되는 주체의 변화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매체의 변화는 이러한 열망이 ‘노풍’과 같은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풍’의 사회문화적 분석은 적어도 이러한 세가지 차원을 모두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다양화의 시대

1970년대를 지나며 경제적 기반을 크게 확충한 한국 사회는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새로운 변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일인당 GNP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한국의 일인당 GNP는 30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일인당 GNP는 1,000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다카키 마사오 정권이 세웠던 기한에 비해 무려 20년이나 앞당겨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1990년대가 되자 한국의 일인당 GNP는 7,000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OECD 국가들의 일원이 된다.

20년 사이에 한국 사회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적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물리적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변화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변화는 정치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년 사이에 한국 사회는 단순히 ‘거지 국가’에서 ‘부자 국가’로 변한 것이 아니다. 소비사회화 속에서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 바뀌었으며, 권위주의가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았어도 정치적 자유화와 민주화는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경제적 근대화를 넘어서 문화적 근대화와 생태적 근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문화적 핵심은 ‘다양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양한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경제성장이 낳은 대단히 중요한 문화적 결과이다.

독재는 정치적으로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독재체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길러놓은 지배구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의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것은 군벌, 정벌, 재벌, 학벌의 사대 벌족들이다. ‘문민정부’와 ‘정권교체’로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에 모종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지배구조 자체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패거리 정치’의 지속이었다. 사대 벌족의 지배는 ‘패거리 정치’를 통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로 말미암아 이러한 ‘패거리 정치’와 사대 벌족의 지배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다.

‘패거리 정치’를 통해 유지되는 한국 사회의 낡은 지배구조는 ‘다양화’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것은 소수의 힘과 돈으로, 소수의 힘과 돈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양화’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좋아하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사대 벌족이 애용한 지배 이데올로기로는 반공주의, 성장주의, 지역주의, 학력주의의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반공주의와 성장주의는 다카키 마사오의 집권을 계기로 일종의 국가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지역주의도 역시 다카키 마사오가 유신독재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퍼트린 것이고, 학력주의도 다카키 마사오가 ‘조국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카키 마사오가 만들어 놓은 지배구조는 전능한 통치자로서 자신을 정점에 두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그 아래에 기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한국 사회의 ‘주류’란 다카키 마사오가 만들어 놓은 이러한 지배구조에서 상층을 차지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노풍’은 이러한 ‘주류’에 맞선 ‘비주류’의 도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비주류’의 도전으로서 ‘다양화’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더욱 다양한 욕망을 더욱 자유롭게 추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낡은 지배구조의 변화를 요청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예컨대 사상과 표현의 독점이라는 비합리적 상황의 종식을 뜻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문화적 합리화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노풍’은 이 사회의 ‘다양화’가 낳은 ‘문화적 합리화’의 한 산물이다.

3. 주체의 변화

사이비언론 "월간 조선"에서는 ‘노풍’을 ‘젊은 좌파’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노무현의 얼굴에 붉은 물감을 퍼붓기 위한 담론적 술책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물론 낡디 낡은 반공주의이다. 이 주장은 반공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젊은이들을 ‘노풍’의 주역으로 본다는 점에서 현실착오적이기도 하다. 물론 "월간 조선"이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월간 조선"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젊은 좌파’들은 노무현보다는 민노당과 사회당을 지지한다. 그들이 보기에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원칙적으로 보아서 좌파는 노무현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봐도 노무현을 좌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좌파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현실론과 원칙론의 대립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일부 현실론자들은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노무현을 지지하는 일부 ‘젊은 좌파’는 있을 것이다.

‘노풍’은 구조뿐만 아니라 주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문화적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서 "월간 조선" 식으로 ‘젊은이’에 주목하는 것은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유권자를 사건사적으로 배열해 보면, 한국전쟁 세대, 4촵19세대, 유신세대, 5촵17세대, 6촵10세대, 신세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세대란 해당 시점에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청년기였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적일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 세대는 70대가 된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4촵19세대는 상당히 보수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정치적 저항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 뒷세대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 절대 다수가 독재와 ‘패거리 정치’의 폐단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의 큰 특징으로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기는 대단히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 자체가 실은 독재와 ‘패거리 정치’의 중요한 결과이다. 4촵19세대부터 신세대에 이르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 점에서 모두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잘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 참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풍’은 젊은이만의 현상이 아니다.

물론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있는 데, 뒷세대로 올수록 고학력자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와 함께 정치적 참여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배우고 실천적으로 익힌 사람들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5촵17세대와 6촵10세대와 신세대가 그렇다. 이제는 어느덧 30대가 된 신세대는 흔히 탈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이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듣곤 했던 세대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차이의 존중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최초의 문화정치 세대이다. 신세대도 정치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그 형식과 내용의 모든 면에서 형편없이 낡아빠진 기성정치를 혐오할 뿐이다.

한국의 정치에서 젊은이들, 특히 학생들은 오랫동안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물론 지금도 그 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노풍’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의 주도적 구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노풍’은 다른 것을 말해준다. 학생 시절에는 왕성한 정치적 활동을 했던 사람도 기성세대가 되고나서는 완전히 정치에 등을 돌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기성세대의 자발적인 참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제도정치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라는 점에서, ‘노풍’은 한국의 정치문화사에서 나타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다. 그 동안 한국 정치는 썩어 문드러진 제도정치가 여전히 지배력을 과시하고, 이에 도전한 진보정치는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왔다. ‘노풍’에는 제도정치의 합리적 개혁과 이에 바탕을 둔 진보정치의 전진에 대한 기성세대의 기대가 담겨 있다.

4. 인터넷 효과

인터넷은 ‘노풍’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달 중순 경에 울산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나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에게 동보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에는 ‘3당합당’에 반대해서 이를 악물고 주먹쥔 손을 번쩍 쳐들어 발언권을 신청하는 노무현의 사진들이 덧붙여 있었다. 요즘에는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들은 아주 큰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성을 알리는 데서 이 사진들은 아주 큰 구실을 한다. 내 친구의 설명을 보니, 얼마 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친구가 보내온 것들이었다. 그 친구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인가 하는 여학생이었다. 이 여학생은 또 자기가 가입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이 사진들을 보았는데, 여기에는 사진작가가 직접 올려놓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노무현이 배달되었을까?

이제는 인터넷도 힘이 세다. 이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도 ‘노풍’은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례이다. 한국에서 매체정치가 처음으로 시도되었던 것은 1987년이다. 백기완이나 이애주같은 분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전국민을 상대로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며 가슴을 떨며 기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대중매체는 대중사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도구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만들어낸다. "조선일보"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조차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 그 좋은 예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중매체의 정치적 위력은 대단히 강력하고, 이 때문에 정치권력은 언제나 대중매체를 길들이고 싶어 한다. 정언유착을 통한 민주주의의 변질과 타락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이었다. 인터넷은 이런 상황에 통렬한 타격을 가했다.

인터넷은 개인들로 하여금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개인-대중매체’이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매클루안의 명제에 따르자면, 인터넷의 등장은 그 자체로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함축한다. 텔레비전이 대중민주주의의 신장과 그 조작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면, 인터넷은 참여민주주의의 확산과 그 왜곡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노풍’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문제를 과장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야말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니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뒷걸음질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단순히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더 많은 사실과 더 바른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일보"가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진실을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다.

인터넷이 이렇게 이용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일방향 홍보매체가 아니라 양방향 토론매체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수동적인 시청자를 만들어내지만, 인터넷은 능동적인 이용자를 만들어낸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문제를 보여주지만, 직접 참여해서 고칠 수 있도록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치적 불감증은 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지배적 매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인터넷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고, 나아가 고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참여의 매체이다. 기존의 대중매체는 언제나 왜곡과 조작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인터넷은 그러한 가능성을 샅샅이 밝혀내고 치유할 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초고속 인터넷통신망’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인터넷 효과’는 이 나라에서 이미 일상적 현상이 되었다. ‘노풍’은 그 중요한 사회적 결과들 중의 하나이다.

5. 정치개혁의 중요성

문화적 ‘다양화’는 모든 사회가 나아가는 일반적인 발전의 길인 것처럼 보인다. 그 내용과 방식에서 다소간 차이는 있을지라도 문화적 ‘다양화’라는 길 자체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너무나 가난해서 당장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곳에서는 이런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먹어야 사는 존재인 것만이 아니라 놀아야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 당장의 생존에서 한시름만 놓을 수 있게 되어도 우리는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놀고 싶어한다. 생존이 문제시되는 상황에서는 독재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통해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그것의 문제점을 느끼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높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의 취향과 욕망이 바뀌었고, 매체의 구성이 변했고, 자유화와 민주화가 상당한 정도로 전개되었다. 문화적 ‘다양화’는 정치적 ‘다원화’를 요청한다. 이것은 ‘패거리 정치’와 같은 ‘전근대적 정치’로는 이룰 수 없는 ‘근대적 정치’의 과제이다. 요컨대 ‘노풍’은 한국 정치의 근대화를 한 단계 더 밀고나가는 것이다. ‘비주류’에 속하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이 그 바??자리잡고 있다.

노무현은 ‘10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나는, ‘정치는 국민에게, 국회는 국회의원에게, 당은 당원에게 돌려주는 정치개혁을 지속한다’는 여덟번째 과제가 사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사회를 이끌고 가는 집합활동이다. 문화적 ‘다양화’가 진척될수록, 이러한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처럼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갖고 있는 곳에서 정치개혁의 중요성은 다른 어떤 과제보다도 크다.

물론 정치개혁은 단순히 제도정치 안의 개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보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제도정치의 틀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노풍’은 이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진보정치에게 ‘노풍’은 분명히 자극적인 참조대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풍’은 제도정치의 틀 자체가 바뀔 문화적 기반이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필자는 현재 상지대 교양과, 사회학교수입니다.

(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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