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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할 백범 김구의 노선
날짜 2002-12-02 조회 2430
* 필자 : amharez

DJ와 YS, 그리고 노무현을 대상으로 100문 100답을 했을 때, 수많은 질문 중에서 일치하는 곳을 찾는다면 그 질문은 무엇이 될까? 100개의 질문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흔히들 약방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질문에서 분명히 이 3사람은 일치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차지하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에 있어서 김구와 이승만의 노선은 좌우대립이 심하던 해방 공간에서도 우파 내의 치열한 노선 싸움을 치르게 하였다. 익히 알다시피 김구 선생은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하며 통일정부 수립에 진력하였고, 이승만은 단독정부론을 주장하였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정부수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두 사람의 노선 투쟁은 대한민국 현대사 50년동안 두고두고 되풀이 될 이상론과 현실론의 숙명적 대결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 즉 민족의 분단을 현실이라 주장하였고, 김구 선생은 단정론자를 "자살적 현실론자"로 규정하였다. 그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 속에서 지금 가는 길이 "사도인지 정도인지"를 끊임없이 구분하였고, 그래서 남북협상을 위하여 과감히 저 38선을 넘어갔던 것이다.

이승만의 현실론과 김구 선생의 이상론은 친일파 문제에서 또다시 부딪친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끌어 모아 자신의 집권 기반으로 활용하였고, 논리로는 당연히 현실론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일제시대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일제 35년 동안 경험한 행정 능력을 해방된 조국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론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은 절대로 해방 조국에서 친일파를 건국의 기둥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군정과 결탁하여 해방 공간에서 치안과 행정권을 다시 장악한 친일파는 현실적 힘을 가지게 되었고, 백범 김구의 친일파 척결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다. 결국 단정론을 주장한 이승만과 친일파와의 합작 속에서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을 백범 김구 선생은 눈으로 목도하고, 배후에서 친일파가 지원하던 안두희의 손에 암살을 당한 것이다.

암살과 함께 백범 김구의 노선은 현실 정치에서 이승만에게 패배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상론과 현실론의 대결에서, 그리고 민족통일과 분단의 길에서 현실론과 분단이 맞아떨어진 단정론의 승리였던 것이다. 또한 이 승리는 이승만이 현실 정치의 힘을 꿰뚫고 영입한 친일파가 가져다준 전리품이었다.

이후 이승만의 승리는 1950년 6.25를 거치면서 더욱 공고화되어 갔다. 극심한 남북대결은 우파 내에서 온건파와 이상론의 입지를 급격하게 줄어들게 만들어 버렸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인 김범우는 백범의 민족주의 노선을 따르다가, 전쟁이라는 극한 선택 상황에 직면에서 북을 선택해버린다. 백범 김구의 노선이 남쪽에서 얼마나 입지가 좁아졌는지를 소설은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의 노선은 4월 혁명과 함께 결정적 균열을 맞이한다. 10여년을 끌어왔던 이승만의 노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대한민국 체제 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모든 진보의 씨앗은 북쪽이, 모든 보수 헤게모니는 남쪽이 가져간 상황에서 벌어진 4월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새로운 희망이었다. 4월혁명과 함께 김구 암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천명되고, 민주화운동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자연스럽게 통일운동으로 전화한다. 바야흐로 일시적으로 패하였던 백범 김구의 노선이 단군이래 처음으로 민중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을 뒤로 하고 부활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의 복권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쿠테타에 성공한다. "반공"은 이승만이 친일파를 용인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내세우며 자신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4월 혁명으로 숨이 끊어질 것 같던 이승만의 단정론은 다시 박정희를 통하여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구악을 일소한다면서 시시콜콜한 비리사건까지 들춰내며 정치인들을 처단하면서도, 유독 김구 암살사건만은 일사부재리와 공소시효를 내세워 역사의 암흑 속으로 묻어버렸던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과 현실론은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서 더욱 활짝 날개를 펴게 된다. 이승만이대한민국 건국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민족통일이란 이상을 희생했듯이, 박정희는 경제 개발이하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민주주의를 희생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에 의해 시작된 반공 애국주의는 박정희 시대에 더욱 극에 달하게 된다.

1971년 김구 노선으로 무장한 새로운 40대 정치인이 등장한다. 바로 젊은 DJ다. 박정희와 맞대결한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은 노동자 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국 안전보장안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안보와 경제성장론으로 무장한 박정희와 한판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DJ는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 때 그가 공약한 사항은 무려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모두 실현시키고 만다. 노사정위원회,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 그리고 현재 북일수교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간적 집념은 정치적 평가를 떠나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측면이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승만 노선의 충실한 계승자 박정희가 안보를 내세운 반공을 지배이데올로기로 내세울 때, 김대중은 남북교류를 들고 나와 박정희와 정면대결을 펼쳤다는 점이다. 그의 정치적 모델은 다름 아닌 백범 김구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가 현직 정치인 중에서 유일하게 독창적인 통일방안을 갖고 있다는 것에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안겨 준 분야도 남북화해였음을 볼 때, 김대중은 김구의 노선을 들고 박정희와 대결을 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란한 연설 솜씨로 대중을 휘어잡던 김대중은 95만표 차이로 석패 하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기반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유신체제로 정적의 등장을 불허하고 독재의 외길로 치닫게 된다. 김대중 노선은 반공주의 아래에서 용공으로 몰려야 했고, 이것은 앞서 걸었던 김구 노선이 받았던 것과 동일한 탄압이었다.

이러한 유신체제 아래서 대한민국 민주화 세력은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현재 민주화 세력이 반유신투쟁과 광주 항쟁 이후 80년대 민주화 운동세력이 주축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신과 80년대 5공, 6공 정권으로 이어져 온 사람들은 산업화 세력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은 1992년 노태우 퇴장과 함께 물러나고, 민주화 세력인 YS와 DJ가 차례로 집권에 성공하였다. 앞서 DJ가 백범 김구 노선을 계승한 공약을 들고 나왔다고 언급했지만, 과연 현재의 김대중 정부가 완벽한 김구 노선의 계승이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재 김대중 정권이 실패라 표현하든 위기라 표현하든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 원인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YS와 DJ는 모두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 선생을 꼽고 있다. 김영삼은 3당합당이라는 지극히 반민주적인 정치 반역으로 집권에 성공하였지만, 자신의 아이덴티는 민주화운동 나아가 백범 김구의 노선에서 찾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정서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조선일보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렸던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영삼은 취임하자마자 4월 혁명 기념식을 성대히 치르며 5.16 쿠테타로 스러져가던 4.19이념을 자신의 손으로 되살리고자 노력하였다. YS의 취임사에 "어떠한 우방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표현한, 거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사유가 될만한 구절이 포함된 것은 말로나마 백범 김구의 노선이 화려하게 부활하였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YS는 실패하였다. 3당합당이란 원죄는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 원죄를 탈피하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자신을 정통 적자로 올리고 싶어했던 욕망을 꺾게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백범 김구에게 정도가 아닌 사도의 길은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김구 선생의 노선은 현실이란 미명 하에 사도를 걷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길이다.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로 표현한 3당합당이란 현실론으로 김구를 따르려 했지만, 현실론과 김구의 노선은 태생부터가 다른 길이었다.

김영삼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무식한 머리였다. 감의 정치를 좋아하는 김영삼도 백범 김구의 노선이 정통과 역사가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머리는 갖고 있지 못하였다. 개인적인 판단을 덧붙이자면, 김영삼이 백범일지를 읽었는지는 확인이 안되지만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김구 선생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할 정도의 지식과 이해력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식은 이인모 노인을 송환할 정도로 인도주의적 대북정책을 유지하다가 남한 내 강경반공세력에 밀려 남북관계를 온탕에서 급격히 냉탕으로 만들어버린 조울증 환자식 대북정책이란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였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4월 혁명의 복권 등 김구 선생의 노선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자 조선일보는 상당히 긴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 해체, 이인모 노인 북송, 전직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진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은 조선일보의 긴장을 극으로 몰아갔다. 김구 노선의 부활은 반공주의에 기대 성장을 거듭한 조선일보의 목을 겨누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한완상, 김정남 등 문민정부 내 민주인사들을 사상검증이라는 명목으로 낙마시켰고, 이승만 노선의 사수를 위하여 "거대한 이승만의 생애"라는 시리즈물을 기획물로 내놓기도 하였다. 조선일보가 한보 사건에 대한 비난 논조를 통해 문민정부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것은 YS의 돈키호테식 개혁정책에 대한 화풀이였던 것이다. 이 당시에 노무현이 YS를 옹호하고 나섰던 것은 이러한 정치사적 뒷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DJ는 YS에 비교하면 언어적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이해 못할 사람을 여기서까지 설득할 생각은 없다. 지역주의나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 바라본다면 이것은 분명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타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YS와 함께 정치를 시작한 노무현이 더 많은 정치인생의 시간을 끝까지 DJ와 함께 한 요인이기도 하다. 수구냉전세력의 흠집내기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김대중이 백범 김구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DJ 개인의 평가에 대한 괴리는 그의 정치노선과 정치행태의 괴리에서 기인한다. DJ의 정치노선은 사실상 너무 탁월하다. DJ에게 공업용 미싱을 갖다 줘야겠다고 말해서 설화를 일으킬 정도로 DJ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있는 김홍신 의원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재선의원으로서 김대중의 복지정책에 대해 가장 앞장서 찬성을 하였던 사실은 무척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비록 저항적 지역주의였다 하더라도 분열적 지역주의에 의존한 DJP연합, 자신의 말을 뒤집고 정계에 복귀한 그의 이력은 정치 노선의 탁월성에 비하여, 너무나 비도덕적인 그의 정치 행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DJ는 백범 김구가 되기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현실 정치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이 너무 컸던 것이다. DJ가 백범이 되길 원했다면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고 영원히 "김대중 선생"으로 남았을 것이다. 만일 성공한 현실 정치인만을 원했다면 "공화국 연방제"니 "햇볕정책"이니 해서 용공분자로 몰고 갈 꼬투리를 스스로 남기며 그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그는 성공한 김구 선생의 길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민정부 하에서 통일원 장관을 맡아 인도주의적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았던 한완상은 6공 시절 "간디가 될 것인가, 네루가 될 것인가"라는 신문 기고문에서 간디가 되려고 하면 간디고 되고 네루도 될 수 있지만, 네루가 되려고 하면 간디도 되지 못하고 네루도 못될 것이란 충고를 하였다. 한완상은 현실 정치인에게 간디의 길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실 정치인에게 간디의 길이라니 ... 그런데 김대중은 정말로 간디의 길과 네루의 길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지금 쓰고 있는 맥락에서 표현하자면 바로 성공한 백범의 길을 걸어가려 했던 것이다.

DJ가 그토록 원했을 성공한 백범의 길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는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을 작정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강고한 수구세력이 있지만, 대통령은 그러한 현실도 극복해야 하다는 역사적 책무를 맡긴다는 점에서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보다 DJ옹호자였던 나의 입으로 DJ를 비판하고 싶지 않은 개인 심정도 작용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밝힌다. 다만 현실적으로 DJ가 백범 김구 노선을 온전히 계승하기에는 지나간 군사독재문화가 너무 강고 했고, 그 기간이 너무 길어 김대중을 너무 늙게 만들어버렸다는 것만을 짚어 보고싶다. 젊은 시절 그의 총명은 노기와 함께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이란 정치인을 앞에 두고 있다. 실패하고 왜곡되게 이어온 김구의 노선을 들고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노무현이 등장한 것이다. 이상론으로 현실론을 무너뜨리는 최초의 정치인으로 노무현은 한국 정치사에 나타난 것이다. 김구 선생은 일반적 이상주의자에 맞게 드라마틱한(?) 암살로 생을 마쳤다. 노무현 역시 많은 정치 인생을 낙선이란 실패로 점철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단기적인 전투에서는 계속 패배하고 있음에도 그의 긴 인생이란 전쟁에서는 승리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총선에서 최대 라이벌이던 이인제가 선대위원장으로 승승장구하고, 노무현이 부산에서 장렬히 패배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현실 앞에 선 이상주의자의 실패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성립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뿐만 아니라 패배를 통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백범 김구 위에다가 링컨을 들고 나왔다. 자신은 백범의 노선을 따르지만, 현실정치인으로서 링컨을 모델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서 DJ가 걸어갔던 정치노선과 정치 행태의 괴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정체선언이 바로 링컨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의 계승이란 말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자산은 정치 노선이고 부채는 정치 행태이다. 노무현은 자산을 이어받으면서 어떻게 부채를 청산할 수 있는지를 링컨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링컨의 제기는 노무현이 백범이 늘 강조한 정도를 걸으면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지금 민주당 분당 사태를 보면서 나는 노무현의 힘을 또다시 느끼고 있다. 어떻게 국민들이 안겨준 후보 자리인데, 저것도 못 지키고 있나 쯧쯧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도 오히려 민주당 후보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방향으로 민주당을 끌고 나가고 있다. 재신임을 민주당 지도부에서 해줄 때 모른 척 해도 되었건만 굳이 재경선을 들먹이고, 후보자리를 꿰차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신당창당도 받아들고 사실 보는 사람은 무슨 똥 배짱인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금도, 조직도 없이 오로지 명분 하나를 틀어쥐고 민주당이란 정당을 노무현 당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교동 구파의 견제를 일거에 날리며 그는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중도개혁포럼이란 민주당 내 최대 조직의 수장인 정균환 의원이 흔들고 있는 민주당에서 노무현 당을 만들어가고 있다. 노무현은 국민참여경선에서는 호남+충청 연합을 주장하는 지역주의라는 현실론에 맞서 국민통합이란 이상론을 내세워 승리하였다. 그리고 오로지 명분 하나를 틀어쥐고 민주당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무현의 실험은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성장이 가능한가를 가름하는 기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작년에 감사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우리 나라는 부패 속에서 성장을 하고, 성장할수록 부패가 심해지는 이상한 나라"로 표현하였다. 너무나 가슴 아픈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되고,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가 이 땅에 왜 팽배해졌는지를 그대로 표현해준 말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하고, 부패를 용서하고 반공과 안보를 위해 백성들을 때려 죽여도 된다는 극우주의적 발상이 한동안 통용된 이 나라의 "현실론"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연세대학교 함재봉 교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구분하고 있다.

"과연 남한은 친일파들을 수용하고 일본과의 국교를 그렇게 빨리 정상화시켜야 했는가?"

"과연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밖에 없었는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왜곡하면서 중상주의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했어야 하나?"

이 3가지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이면 보수이고, 부정적이면 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를 두고 이념 또는 이론적으로 허점 투성이이나 현실적으로는 성공한 반면, 진보는 이념 또는 이론적으로는 맞으나 현실적으로는 실패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함재봉 교수는 보수적 정치학자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실패한 한국 진보에 대하여 별다른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그가 옹호하는 보수에 의해 이끌어온 한국 현대사가 친일파를 수용하며 민족주의란 원칙이 왜곡되었고, 북한과의 경쟁을 위하여 민주주의란 원칙을 왜곡했고, 마지막으로 급속한 경제개발을 위하여 자유경쟁을 보장하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였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한국 현대사의 왜곡을 끝장낼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입버릇처럼 역사의 순리를 강조하면서 해방공간에서 친일파가, 민주 정부에서 독재에 협력한 사람이, 국민통합의 시대에 분열적 지도자가 나와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백범 김구의 노선을 따르는 것이고, 정도로서 현실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링컨을 외치는 것이다.

노무현의 앞에는 지난 친일세력과 군사독재, 분열세력이 모여서 만들어낸 최상의 후보 이회창이 서 있다. 그의 모토가 법과 원칙이었고, 지금 "반듯한 나라"를 외치는 것은 의미심장한 함의가 있다. 이제 수구반동 세력도 논리와 이론을 갖추고 반대 세력을 제압하겠다는 뜻이다. 이회창은 법과 원칙으로 상징되는 메인스트림 최고의 대통령 후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균열은 내부로부터 쉽게 전해져 왔다.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은 법과 원칙이 남에 들이댈 때만 추상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했을 때만이 힘을 발휘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또한 그렇게 법과 원칙에 추상같았던 이회창마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았던 것은 이 나라 메인스트림의 도덕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즉, 그들의 원칙은 자신에게 유리했을 때만이 적용되는 원칙인 것이다.

진정 노무현을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노선이 부활하기를 바란다. 노무현이 당선되고 나서 YS를 찾아간 일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입방아에 올리고 노풍이 사그라든 원인이라고 비판을 하곤 한다. 정치 전술상으로는 유불리의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노무현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서 YS를 찾아갔다는 점이다. 이것을 명백히 온라인 공간에서 이야기한 사람이 요즘 종이 신문의 기자로서 인터넷 상에서 명망을 얻고 있는 국민일보의 서영석 기자다. 다음은 서영석 기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노무현씨에게 상해임정의 복원은 반세기 이상 흐른 시점에서 도저히 이룩될 수 없는 현실적 친일잔재 숙청에 대한 이념적 대안이란 의미가 있으며, 신민주연합론은 이러한 정통성 복원을 위한 징검다리로써, 또한 현실적 대안으로써 도구란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노무현씨가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 김구선생을 들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역시 인터넷 상에서 평가를 받을만한 필력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위의 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의 다변에서 핵심과 논리를 끄집어낼 줄 아는 기자들, 그리고 역사적 맥락과 통찰력으로 바라볼 줄 아는 기자가 있는지 솔직히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물론 그런 기자들이 많이 있으나 현실 지면에 반영될 때 데스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는 것이겠지만, 가끔 노무현의 논지가 엉뚱한 해석으로 신문지상에 실릴 때면 기자들이 무식한 것인지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영석 기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가 후해지는 것이다.

서영석 기자가 노무현이 상해 임시정부의 복원을 꾀하고 있다고 한 것은 친일에 가려져 있던 백범 김구의 민족주의와 반공에 가려져 있던 자유민주주의의 정신, 정실 자본주의에 왜곡된 원칙과 신뢰의 시장질서를 노무현이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서영석 기자는 노무현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노무현씨가 왜 신민주연합론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를 궁구한 결과, 필자는 이 같은 답을 얻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노무현씨는 진짜 재평가될 필요가 있는 무서운(?) 정치인이란 점을 최근 들어 절감하고 있다."

단기필마 노무현이 백범 김구의 노선으로 진흙탕 같은 한국 정치판에서 어떻게 역사의 승리와 복권을 이루어낼지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왜냐하면 유방과 항우의 대결에 버금갈 역사의 라이벌 DJ와 YS의 역사적 대결 뒤에,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역사적 설화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노무현더러 어설프다고 말하는가? 어설픔 속에 피어나는 그의 무서운 정치적 행보와 냉철한 계산에는 결코 범인들이 넘볼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가 실려 있다.

노무현은 명분과 정통성을 가지고, 반칙이 횡횡하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한국 정치판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자리하게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백범 김구를 역사의 패배자로 보내고, 또다시 노무현을 역사의 패배자로 또다시 보낼 수는 없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런 대한민국, 마음 속의 38선부터 지워나가고 문화 강대국의 이상을 설파하던 백범의 정신이 노무현을 통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200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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