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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노무현은 언제나 불안하다?
날짜 2002-12-02 조회 63415
* 필자 : 이진

필자 이진씨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밀착 동행 취재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장시간 단독 인터뷰를 한 뒤 지난 달 초 <노무현의 색깔>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글은 세간에 알려진 노 후보의 몇 가지 긍정적·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재해석의 성격을 갖고 있다.

몇 개월 동안 노 후보를 밀착 취재했던 이씨는 "그의 알려진 이미지 속엔 몇 가지 중요한 오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국민통합21의 극적인 후보단일화를 통해 1강2중 구도에서 1대1 양자 대결의 주체가 된 노무현 후보를 재검증해보자는 의미에서 두 차례에 나눠 그의 글을 싣는다. 기사에 나오는 노 후보의 코멘트들은 별도로 출처를 밝혀 놓은 것이 아닌 한, 이씨가 노 후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왔던 것들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가슴이 설레었다"

사실 "르네상스 서울 호텔"은 그 외양이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준다. 회색 외벽은 길 건너 상록 회관과 비슷하고, 강남역과 삼성역 사이를 흐르는 테헤란로의 한 가운데에 서 있으나 다른 빌딩들의 수려한 디자인에 견주면 그다지 큰 외적 매력은 없는 곳이다.

게다가 언론으로부터 이름 또한 "줄기차게" 잘못 불리고 있다. 라마다 호텔 체인이어서 "라마다 르네상스"라고 했다가 4년 전에 메리어트 호텔 체인으로 넘어가면서 르네상스 서울이라고 이름을 바꿨지만, 11월 24일 밤 11시경 TV 3사 화면 아래로 흘러나온 자막이나 속보를 알리는 아나운서들의 입에선 여전히 "라마다…"로 불리고 있었다.

"YTN만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줬던 것 같아요. 저희로선 그게 좀 아쉽습니다." 지배인 김종호 씨는 당시 상황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그렇게 "프로페셔널"했다.

주중에 워낙 붐비는 곳이라 그런지 일요일 밤이면 유독 유령의 도시를 연상케 하리만큼 한가한 테헤란로의 밤, 그 호텔 직원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어느 객실 손님의 문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신들의 호텔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V를 보던 손님이 "이 호텔에서 민주-국민통합21 사람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는데 사실이냐"는 전화를 해왔던 것이다.

"밤 10시경부터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냐고요. 그러나 저희들은 전혀 몰랐어요" 하는 김씨는 누군가에 의해 당일 밤 20명쯤 들어갈 수 있는 컨퍼런스룸 예약이 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4층 토파즈룸으로 변경된 것 외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통합21측은 이미 24일 새벽, 여론조사 기관들과 근접 거리에 있는 그 호텔을 발표 장소로 정한 뒤 오후 5시쯤부터 자리를 잡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17층에 방 세 개를 빌어 스위트 룸 하나는 종합 상황실로 하고, 나머지 일반 객실 두 개는 민주-국민통합 양당의 협상단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조사 기관으로부터 근거리에 있는 그 호텔을 잡은 것이라기에 어떤 "만일의 사태냐"고 했더니, 관계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심지어 교통 사고까지…"라고 답했다. 여론 조사 방법의 보안 누수 현상으로 인해 단일화 협상 자체가 무효로 돌아갈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며칠 전을 생각하면, 결과물을 옮기던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교통 사고도 염두에 두었다는 그들의 신경 과민한 긴장감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겠다.

밤 10시40분쯤부터 각 언론사 기자들이 호텔로 들이닥치자, 호텔리어들은 급작스레 분주해졌다. 자정(밤 12시) 여론조사 결과 도착, 25일 0시10분에 발표, 환호성, 흥분, 웃음, 눈물, 정몽준 후보의 패배 연설, 노무현 후보의 승리 연설, 1강 2중구도 붕괴…. 밀물처럼 들어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그 날, 당직 지배인이었던 조진년씨는 근무 일지에 이렇게 짤막한 기록을 해 두었다.
"역사의 현장이라는 곳에서 근무했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었음."


노무현을 불 구경하듯 보다

같은 시각, 내 집에서는 호텔이 훤히 보였다. 뉴스를 들으며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호텔 전면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23층 호화 클럽 호라이즌의 샹들리에 불빛은 여전히 같은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인데 그곳 회색 벽안에서 커다란 사건이 생중계 되고 있다는 것이 내겐 신기한 일이었다. 런닝복 차림인 채 한 걸음에 그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갈까 생각도 해 보았다. 몹시 흥분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여름 월드컵 선수단이 그곳에 머물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대 사건도 역시 "길 건너 집 불 구경"하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4월 초부터 노무현 후보와 그의 캠페인 진영을 취재하기 시작한 이래, 내가 견지하고자 최대한 노력해왔던 것이 아마 그 "길 건너 집 불 구경" 태도였지 않았나, 한다. 불이 번져 가는 방향과 연기의 흐름, 진화하려는 사람들의 분주한 노력들을 길 건너에서 보며 제 3자적 관찰자 시점을 견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런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노 후보를 두고 세간에서 논하는 그에 대한 몇 가지 이미지는 내가 보고 느낀 것과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내가 지금 설명할 수 있는 노 후보는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도 거의 몰랐고, 그랬음으로 해서 감정적 편향 없이 만났던 그를 점차 알아가게 되면서 깨달은 것들 중 몇 가지이다.

왜 설명이 필요한가 묻는다면, "언컷(uncut)" 다큐멘터리들에서 주인공의 본성을 좀더 자세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노 후보에게서도 "자르지 않고 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과 정치 철학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한가? 불안하지 않다. 그는 가벼운가? 가볍지 않다. 그는 튀는가? 튀지 않는다. 그는 급진적인가? 급진적이지 않다. 리더십이 모자라는가? 모자라지 않다. 심지어 촌스러운가? 그게 바로 노무현만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지난 7개월 동안 "길 건너에서" 내가 발견한 노무현의 "색깔"을 풀어보고자 한다.


"그냥 모르고 당하는 느낌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나온 이후 노 후보 스스로도 4월 28일부터 근 7개월에 걸쳐 대단히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고 하듯이, 그의 캠프 사람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아니 사실 거의 늘 지옥 쪽에 가까운 악재의 연속을 경험했다. 그러니 11월 25일 0시 10분에 지지자들은 물론 노 후보 자신이 느꼈을 환희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노 후보로선 그동안 자신의 말과 몸짓 하나 하나가 세간에서 다르게 풀이되어지고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땐 전혀 다른 남의 것이 되어 있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의 소위 "막말론"이 연일 주요 신문의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에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옛날에는 그래도 법만 지키면 되었는데 지금은… 피할 수도 없어요. 정말 이제는 어디에 가서 말하기도 겁이 나고… 모르고 그냥 당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는 말로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피력했다. 하지만 정치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번 나오고 나면 자기 것이 아닌 그 "직업병"을 원망만 할 수도 없는 것이겠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뒤, 대통령 선거를 20여일 앞둔 시점에 와서야 마침내 노무현-이회창 양자 대결로 압축되었다. 정치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양자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이렇게 긴박한 순간들의 연속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25일 새벽, TV 앞에서 밤잠을 설치며 여론조사 결과를 지켜본 국민들 저마다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교차했었는지 한 방향으로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름다운 패자"에 대한 찬사와 "몸을 통째 미끼로 던져 상어를 잡은 승자"의 카리스마를 경험하는 기쁨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결과를 믿지 못하는 허망함이나 불복하겠다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도 더러 있고, 한나라당의 결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렇게 동상난몽(同床亂夢)중이다.

11월 24일과 25일은 노 후보에게 어떻게 다른 날일까? 노 후보의 사람됨과 능력, 정체성이 모두 "자고 났더니 달라진 날"일까? 몇몇 신문들이 하는 그에 대한 "재평가"가 흥미롭다. "자타가 공인하는 승부사," "칡뿌리처럼 질긴 노무현"이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칭찬"에 노 후보는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지경일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칭찬은 신문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나라당에서도 나왔다. 선대위 관계자 이아무개씨는 "중요한 순간에 승부수를 던져서 정치를 풀어가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그를 "사나이답다"고 평가했다. 앞에 몇 마디를 더 붙이자면, "촌부의 뚝심에 사나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치관계상 적대적일지언정 칭찬은 늘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칭찬 뒤에 있다. 노 후보의 "역사에 남을 배팅"에 대한 감탄을 뒤로 하고, 이제부터는 다시 싸움이다. 이회창과 노무현의 혈전이 남아 있다. 25일 아침 동도 트기 전에 한나라당은 혈전의 무기들을 선명하게 꺼내 들었다. "보-혁 대결"이며, "부패정권의 청산"이라고 한다. 반면에 민주당은 "낡은 정치 대 새 정치"라는 슬로건을 내놓아 서로 칼끝이 맞지 않는 형국이다.

무엇이 되었든, 그 형식적 틀과 정책상의 차이 속에서 정작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더 큰 요소는 "노"와 "창"의 인물론이 될 것이다. 인물보다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실제에서는 "사적 감정"에 의한 변수가 훨씬 클 수 있다. 오죽하면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말을 쓸까.

이슬비에 옷이 젖듯이 지난 몇 달 동안 유권자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두 후보의 이미지는 크게 봐서 "지루한 이회창"과 "불안한 노무현"이다. 두 후보 중 누구에겐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있는 유권자는 상관없겠지만, 부동표층에게는 선거일 당일 아침까지도 두 후보 저마다 풍기고 있는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부동표의 변심은 무죄"(?)가 아니던가.


노무현의 색깔

"불안한 노무현"이 가지는 함축적 의미들을 풀어 보면 "가벼운 이미지"와 "과격한 이미지" 그리고 "리더십 부족"의 문제가 있다. 언행이 신중하지 못하고, 사상이 급진적이며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이다.


"가벼운 이미지"라는 것부터 보자.

11월 23일 저녁, 단일화 후보 검증을 위해 노 후보와 정몽준 씨가 TV에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은 "마이동풍형"이라 여기고 있던 정몽준 씨의 핵심 근접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에 대한 놀라움 못지 않게 노 후보의 말을 아끼는 무겁고 점잖은 태도에도 놀랐을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노 후보가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보도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의 취약 지지자 층인 50대 이후 사람들에게 좀더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주문"에 답하기 위해, 2,30대 지지자들이 아쉬워했던 "공격적 토론"을 극히 자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자신의 세칭 "가벼움"을 숨기기 위한 제스처는 아니다.

노 후보는 자신을 가볍다고 여기는 것에 가장 억울함을 느낀다. "튄다, 거짓말한다, 교만하다, 독불장군이다, 이런 험담들이 억울하고 분하지요. 이건 아주 교묘하고 악의적인 것입니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들여다 본 노무현의 속내에서 "가벼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간단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이렇다.

앞에서 11월 24일 밤, "노 후보 자신이 느꼈을 환희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클리쉐(cliche)에 불과할 뿐더러 노 후보를 잘 모르는 소리라고 내가 스스로에게 자승자박해야 할 표현이다. 그는 "성취에 감동하지 않는 형"이다.

노 후보가 "사실은 별 성취의 감격을 하지 않습니다" 하기에 왜 그런가,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의 답은 "저도 잘 몰라요. 이걸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제가 2차 사법시험을 치고 돌아올 때 부산에서 내려서 공부할 책을 몇 권 더 보충해서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였다.

그는 실제로 4월 27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취임했던 날의 (우리들이 상상함직한) 감격도, 부친의 묘소를 찾아갔을 때의 (우리들이 상상함직한) 흥분도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다음 관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지언정 뒤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거나 하지를 잘 않는다는 것이었다. 11월 24일 밤, 민주-국민통합21 협상단 인사들은 물론 관계자, 그리고 국민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던 시각에도 정작 노 후보는 두 시간에 걸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성취에 감격하지 않는다고 하면 다소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일 것 같고, 그러면 노 후보의 긍정적 이미지 중의 하나인 열정과 배치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차가움을 열정의 반대로 볼 수는 없는 상황이 있다. 그에게서 차가움은 머리이고 열정은 가슴이다. 가슴의 열정은 타인을 향한다.

노 후보가 가장 못 견뎌한다는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한 처우"를 남이 받고 있는 것에는 열정이 타는 것이고, 자신의 일상 생활과 정치를 진행시키는 논리는 머리의 차가움으로 푼다는 말이다. 노 후보에게서 다른 정치인들은 잘 하지 못하는, 거의 가진 것을 다 거는 "승부수"가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 때문인 듯하다.

내가 노 후보에게 놀랐던 것 중 한 가지는 4월 27일 후보로 확정된 이후 부친 묘소를 찾았을 때의 심경 토로였다. 언론은 물론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감회를 "넘겨 집어 감동한 것"이었음을 그는 이렇게 변했다.

"그때 제가 거기에 갔던 것은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자랐던 삶의 흔적을 미디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드리고 싶어서 간 겁니다. "여러분의 고향과 똑같은 곳에서 내가 일어선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여름에 멱 감고 송사리 잡던 그 개울에서 나도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날 비도 좀 오고 그래서 성공을 못했습니다."

나였다면 아마 "나"를 주제로 하여 살아온 인생 역정에 대한 회한과 감격 같은 것에 휘감겨 울고 말았을 일을 그는 "국민"을 주제로 했던 것이다. "감동 흘리지 않는 감수성"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그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1월 중순 여의도에서 벌어진 전국 농민 대회에 참가했던 노 후보가 계란 투척을 받은 것은 이미 주지하는 바일 터이다. 그는 그 전에도 몇 번 성난 노동자들로부터 계란 투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불쾌해 하지 않는 눈치이다. "던지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때문이었다. 가볍지 않은 노무현의 본체에는 사고의 깊이와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이해심이 있는 것이다.

소위 "막말"도 그가 가볍다는 인식에 한몫을 해 주는 것이지만, 이 또한 실제보다는 그의 말을 왜곡해 듣는 이들의 입장이 더 크게 반영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어느 정치부 기자는 "노 후보가 말만 조심하면 대통령감인데…" 라고 아쉬워할 정도로 말이 문제가 되는 듯하지만,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내가 이 단어 생각해 내느라고 억쑤로 머리 썼다" 하던 그의 농담에서도 보여지듯이 염두에 두고 준비한 말들이 대부분이다.

사우나에서든 차안에서든 연설 직전이든 노 후보는 항상 키워드(key word)를 "찾아두는 데" 주안점을 둔다. 상황이 닥쳤을 때에 즉자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것이다. 유난히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이 많은 그는 이를테면, YS 합당을 두고는 "자기 골대에 골 넣은 것" 이라고 하고, DJ가 정계에 복귀한 것을 두고는 "축구 안 한다고 집에 갔다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모두 사람들에게 쉽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말의 형태를 찾는 그의 대중정치 핵심 키워드들이다.

주요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그 유명한 "깽판" 사건도 노 후보로서는 현장에서 그곳 정서에 맞는 친근한 어휘를 찾다 나온 말이고, 그밖에 그가 공격받는 많은 "가벼운 말"들도 본인으로서는 대부분 현장을 중시하는 의도적인 단어 선택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늘 현장에서 박수 받고 나면 다음날 신문에 "깽판 친 듯이"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 또 반전의 예를 잘 드는데 앞을 다 자르고 뒤만 보도하면 이상하게 해석되어지는 것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해왔다.

다만, 가끔의 말실수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나오는 "변종"들이다. 속내를 숨기는 데에 익숙하지 않고,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나오는 그의 말들과 "준비된 토속어(?)"들이 제 3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어긋나게 섞이면서 결국엔 가벼운 말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노 후보로서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딜레마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가볍지 않은 그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그의 "지적 열의"와 학습 능력이다. 그는 관심이 가는 모든 일에 대단히 집중적인 학습을 하고, 그 관심을 산지사방에 걸쳐 다양하게 갖는다. 아내 권양숙 씨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다소 문제"라고 할 정도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이유를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때로 힘이 들어요.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순들에 대한 해결 방법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라고 했고, 주변 참모들은 "미리 생각을 다 해보신 것들"이라고 말한다. 자치 경영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을 때에는 심지어 사무실 가구들도 몇 차례에 걸친 재배치를 통해 마침내 미적(?) 실용성을 갖춘 모습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가볍다는 것은 생각이 깊지 않다는 것인데, 실제의 노 후보는 생각이 너무 많고 깊어서, 우스개 소리를 좀 더하면, 본인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노무현 캠프에서 가장 자신하는 것 중에 하나인 TV 토론도 그의 지적 열의 코드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어떤 질문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가 소위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보면 이렇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것이야말로, 나부터도 잘못 알고 있었던 노 후보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다. 나도 그를 만나보고 이야기해보기 전까지는 그가 좌파 성향을 가진 과격분자(?)인 줄 알았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처럼, 88년 5공청문회에서 보여졌던 그의 얼음 같은 논리에 뒤이어 쏟아져 나온 공격적 열정들은 그를 어떤 의미에서든 과격하다고 여길 수 있게 만들었다. 노 후보는 그 청문회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은 반면으로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는 이미지 하나를 얻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 곧 "left"라는 말은 한국의 대선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들에서도 곧잘 노 후보를 표현하는 수식어구로 사용되고 있다. left라는 말이 한국에서 갖는 의미가 실제 의미 이상으로 부정적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 부시 집권 이후로는 미국에서도 이 단어가 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경향이 있지만, "left"대신에 "progressive", 곧 진보적이라는 단어가 차라리 나을 노 후보에게 미국 언론들은 아직 "left"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다.

대신에 노 후보는 어찌 보면 국민통합 21에서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는 "중도적 합리주의"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본성에서 나오는 생활 습관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색깔을 심지어 "회색"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부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한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편가르기보다는 좌와 우 양쪽 모두에서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버림으로서 힘의 무게를 중심으로 잡아줄 수 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 것이다.

노 후보는 자신을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고 한다.

"노동자들 편 들었으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는 별로 유감이 없어요"라는 그는 "냉정하고 균형 잡힌 평가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과장이 되어 있다,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별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아요" 했다.

그는 또 "내가 노동자들에게 가서 단결하라, 각성해라, 권익을 쟁취해야 한다 하고 권리 투쟁을 부추기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는 거지요" 하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노 후보가 노동자 편도 아니라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대우차 부평 공장을 방문했을 때나 삼성차 살리기 운동에 관한 그의 입장이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던 까닭이다. 노동자 편도 아니라고들 한다고 했더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본시 그런 거죠?" 한다.

결국 노 후보가 좌 또는 우로 표현되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자로서 추구하는 것은 밸런스(balance)이다. 힘의 균형을 맞추어 준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상대주의지요. 상대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절대적 진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민주주의는 보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는 그였다.

한편 노 후보에게서 개방적인 합리성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재벌 혹은 부자들에 관한 그의 생각은 그의 이미지 이상으로 개방적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이고 민주주의 사회인데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소유욕이 있고 그것을 강제로 억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못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정부가 펼치는 데에 이기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노 후보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11월 25일 오전 국립묘지를 방문하는 그를 따른 국회의원의 수효는 50명에 이르렀다. 여의도에서부터 동작동까지 의원 일행을 실은 버스 네 대가 움직였다. 지난 7개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자 씁쓸한 웃음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노 후보가 "후보"가 되고 재차 "후보"가 될 때까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이 당내 의원들을 결속시키는 일이었음은 우스개 말로 "지나가는 견공도 알 일"이었다. 그가 후보가 되자마자 불복 세력이 나왔으니까 그는 리더십을 검증 받을 시간도 없이 그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버렸던 경향이 있다.

물론 초기에 노 후보도 변을 했다. 해양 수산부 장관 시절에도 부임 직후 업무 파악을 하고 일을 제대로 돌리는 데에 수개월이 걸렸던 것처럼, 조직과 계보 없이 당선된 후보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니 기다려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정작 노 후보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3김 시대 카리스마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는 틀이 다른 면이 애초부터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 리더십이었던 때문이다. 군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현장에서 업무 중심으로 일을 하자는 것이었고, 학연-지연을 거부하니(그에겐 그런 것이 없기도 하지만) 그것 따라 줄 서려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한창 언론의 입에 오르던 노 후보의 "당 장악 능력" 문제는 애초부터 커다란 갈등과 조정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세워질 수 없는 조건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바꾸려는 노력은 오랫동안 "왕따" 현상으로 나타났다. 노 후보를 수행하여 움직이는 의원들의 수는 언제나 다섯 손가락을 넘어 세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금배지 없는 노 후보의 참모들 중엔 자신의 "부족한 처지"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도 있었다. 25일 오전 여의도를 출발한 네 대의 버스가 그렇게 일면 안타까워 보였던 것은 그 안에 노 후보의 7개월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이 보였던 때문이다.


노무현의 수평적 리더십은 이 시대와 맞는가?

"맨날 당을 장악했느냐, 안 했느냐 그래요. 내가 왜 당을 장악해요? 장악해서도 안 되고 앞으로 할 수도 없어요. 원만하게 합리적으로 서로 협조 받으면 되는 거니까. 나는 지금 일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엮어 나갑니다. 구체적인 과제 하나가 생기면 그것을 중심으로 의원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그러면서 일이 진행되어 나가야 합니다," 하는 노 후보의 리더십 이야기는 미국의 마이클 멈포드(Michael D. Mumford) 박사의 실용주의적 리더십 이론과 매우 밀접하다.

그는 한 계간지를 통해 "성공하는 리더십은 일 집단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분석하고 대안 제시를 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노 후보가 주장하는 것 중에 현장 정치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노 후보에게 수평적이고 실용적 리더십, 곧 현대적 리더십만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들은 고전적 카리스마로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 "무서운 것"이 "위기에 강하고 선이 굵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가장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 이 부분은 지난 두어 주 동안 노 후보가 보여 준 "온몸을 미끼로 던져 상어를 잡는 승부수" 때문에 나조차도 어안이 벙벙할 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불안한 노무현"의 리더십은 그의 정치 경력에서도 보여지지만 가장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큰 승부수를 걸어 "덮치는," 웬만한 정치인들은 간이 떨려 못할 "짓"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5일 아침 의원들을 실은 네 대의 버스를 보며 노 후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을 쓴 이진씨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불름버그 통신사와 IRE, 웨스턴 켄터키 대학 국제 언론·미디어 경영 트레이닝 프로그램 등 주로 미국 언론 기관에서 일해 왔으며, <노무현의 색깔> 등 다섯 권의 저널리즘 에세이 저자이기도 하다.


(200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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