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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임흥재의 세상구경 > 대자보 세상


임흥재의 세상구경의 대자보 세상
2002 대선이 '봉숭아학당' 반장선거일이라고?
내게는 타임머신이 있다. 상상력과 기억으로 만들어진 그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른 새벽은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또한 미래를 향하여 조종간을 돌릴때 타임머신에 부딪치는 그 충격과 소음을 그대로 견디어야 하는 두려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를 갈까 고민한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좌표를 확인하니 광화문의 촛불을 든 ‘밤길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 시공간 속으로 조종간을 틀자 반년전 ‘밤길의 사람’들로 가득찬 광화문의 붉은 광장을 지나고 15년전 6월의 광화문의 밤, 영등포의 밤을 밝힌 ‘밤길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 속에 뒤섞이어 울고 있는 젊은 ‘나’와 만난다.

내가 저랬을까? 우는 이유가 독한 최루개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인파에 휩쓸려 오도 가도 못하며 두려움에 떨던 공포감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 밤에도 난 가슴이 아팠고 오늘 밤에도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밤이 지나고 밝은 새 날이 오면 어김없이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음으로, 밝은 대낮에 오히려 서로가 낯설어졌음으로, 어둠 속의 은밀한 연대가 날카로운 빛살의 가위질로 잘리워지면 캄캄한 세상에서 꾸던 밝은 세상에 대한 염원은 정반대로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 숨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숨어들도록 하는 거대한 폭력은 건재하다. 장갑차가 깔아 뭉갠 것이 어찌 효순과 미선의 꽃다운 목숨뿐일 것인가? 양키의 궤도차량에 피떡이 된 것이 우리 소녀들의 시신만이 아니듯 우리들의 삶을 절망과 체념으로 죽이고 있는 것은 미제의 폭력만이 아니다. 신성한 개인으로서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집단의 광기와 그 수단인 무자비한 폭력이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상상력이 전망을 수태하기 위해 신음하듯 상상력을 현실화해야 하는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양철북 치는 소년(성장을 멈추어 버린)’으로 살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인간의 정신을 강제하는 모든 것들은 가장 무자비한 폭력이다. 며칠 전 글에서 내가 이번 대선이 수구냉전의 이데올로기를 깨부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밤을 밝히는 것은 미국을 반대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계 질서와 안녕의 파수꾼임을 내세우며 세계 도처에서 벌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폭력을 거부하기 위함이고 국가안보라는 집단의 논리에 철저히 짓밟힌 개인의 신성한 인권말살 행위에 저항하기 위함이다. 그 폭력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이아무개 후보가 우리들의 성스런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말을 들으며 내 타임머신은 지난 여름에 본 영화 속으로 날아 간다.

'나쁜 남자'

다음은 태풍 루사가 전국을 할퀴던 밤에 썼던 글('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나쁜 남자')의 일부다.

왜소해지고 초조해진 내가 싫어서 나는 극장엘 더욱 가지 못한다. 그 꽉 막히고 어두운 공간에서 바라보는 환한 스크린 속의 세상에서 나는 불안하다. 희망없이 살아가는 것은 힘겹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살다가 그 희망을 빼앗기며 살아내기란 더욱 힘겹다. 내가 영화관을 가지 못하는 이유다.

영화는 꿈이다. 희망이며 전망이다. 홍콩의 뒷골목을 비추는 조잡한 느와르(noir)도,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무비도, 심지어 파괴된 지구의 암담한 미래를 투사하는 SF도 영화는 본질적으로 밝은 빛으로 만들어진다... 거장들의 필름이 아니더라도, 3류 재개봉관에 동시상영으로 걸리는 영화일지라도 모든 영화는 눈부신 빛으로 태어나는 꿈이며 동경이며 희망과 사랑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오직 그 제목에 매료되어 사들고 온 책이다. 너무 그럴싸한 제목만으로 나는 감명을 받았다. 내가 있는 어두운 방안, 밝은 세상을 내다볼 스크린이란 창마저 없다면, 우리는 그 고독과 어두움을 견디기 힘들리라.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나는 ‘나쁜 남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김기덕은 기인이다.... 성에 대한 탐구와 그의 집요한 영화작업은 곧 인간에 대한 해부학적 시선에 가깝다. ‘나쁜 남자’에서의 한기와 선화의 사랑은 어긋나 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애착 혹은 집착이다. 선화와 한기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부류의 인간형으로, 섞일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지고 이 땅에 던져졌다. 그래서 선화는 대학생이고 한기는 창녀촌의 깡패(기도)다.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하였나? 숙명 혹은 운명? 아니면 우연... 그 세상에 선화가 있었고 한기가 그녀를 보았다. 그것 뿐이다. 한기는 선화를 욕망하였으며 선화는 한기를 욕망할 수 없었고 욕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한기는 집착하였다. 단지 그것 뿐이다.

한기는 자신의 방식으로 선화를 욕망한다. 그래서 선화는 창녀가 되고 한기는 그녀를 훔쳐보는 것으로 자신의 그릇된 사랑에 탐닉한다... 김기덕에게 있어서 성이란 사랑의 욕망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야수의 본능이다...

투명거울로 나뉘어진 공간은 밝음과 어둠으로 대조를 이룬다. 밝은 방안에 내동댕이쳐진 선화는 가리고 싶은 것이 많아 슬프고 어둔 밀실에서 훔쳐보는 한기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 괴롭다. 선화는 불을 끄고 혼자 있고 싶고 한기는 불을 켜 함께 있고 싶다... 본능이 잠재되어 있거나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평화롭다....

반대로 폭발할 수 없는 욕망은 타락, 곧 떨어짐이다. 선화와 한기는 스스로의 욕망을 폭발시킬 수 없음으로 인하여 선화는 욕망하지 않았던 그 성욕에 자신을 길들인다. 타락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었었던 선화는 이제 스스로를 길들이며 스스로 욕망하고 있는 자신이 된다.

철저히 선화를 짓밟음으로 복수하려했던 한기 역시 어느새 고통스러움과 죄책감으로 선화를 보아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양아치 한기에게는 이것 또한 타락이다. 그렇게 둘이는 애초에 서로가 원하지 않았던 정반대의 방향으로 타락해 간다. 선화는 ‘애욕’하고 한기는 ‘애착’함으로, 드디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던 유리거울을 깨트린다.

‘나쁜 남자’는 칼을 찌른 동생을 용서함으로 냄새나는 시궁창을 벗어나고 치마 끝단을 여미던 선화는 거추장스런 치마를 걷어 올림으로써 시궁창의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마침내 그들은 어둡고 밝은 방안에서 벗어나 뭍과 물의 경계선, 즉 상승의 욕망과 타락의 욕망의 접점에서 만난다. 함께 트럭을 몰며 더 이상 훔쳐볼 것도 부끄러워 할 것도 없는 욕망을 싣고 어딘지 모를 길을 간다.


내게 있어 정치인은 ‘나쁜 남자’다. 특히 수구당의 정치인 혹은 그 집단은 나쁜 남자다. 그들에게 나는 개과천선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 개과천선하겠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우리사회의 정치라는 것은 이처럼 어긋나고 타락한 세계일 뿐이다. 왜? 그들은 자신을 위한 욕망만을 탐닉하기에 그렇다. 늘 국민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행위는 철저히 자신들의 야욕만을 위한 성애였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추잡한 폭로공방을 보면서 나는 더욱 그들을 불신한다. 더욱 타락하라. 그것이 차라리 진실하다. 한기와 선화가 윤락가를 벗어나서도 여전히 배설공간으로서의 트럭을 몰고 다녀야 하는 것은 그들의 숙명이다.

그들이 갈라서지 않는 한 그들은 자신들의 정형화 되고 박제화 된 그 삶의 방식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유일하게 꿰매어주고 있는 봉합사인 까닭이다. 양아치 한기가 선화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부터 그의 욕망이 타락의 욕망인 것처럼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냉전을 선동하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찬동의 언사를 서슴지 않던 정치인의 선거공학적인 표결집을 의식한 추모집회의 참석은 타락한 욕망의 일시적 화해(즉, 한기와 선화의 트럭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욕망(타락한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상대(국민)에 대한 배려로서의 사랑보다 자신의 애욕과 애착을 고집하는 욕망으로서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치인과 정당은 ‘나쁜 남자’ ‘나쁜 영화’일 뿐이다.

이윽고 영화관의 불이 켜지고 어두운 방안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깨달을 것이다. ‘스크린이란 창을 통해 보여진 허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내가 있던 곳이 어두웠기 때문임’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꿈을 꾸지만 어긋난 욕망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자칫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을 어둡게 하려고 획책하는 법이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함께 모이는 것은 나를 비추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비추기 위함이며 내가 있는 주변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한 것임을 정치인은 명심하기 바란다.

‘밤길의 사람들’

아래의 인용글 역시 월드컵의 흥분이 온나라를 들썩이던 지난 6월에 쓰여진 내 글(밤길의 사람들, 그 후)의 일부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풀빛 소설선, 1988년)은 막노동판을 전전한 실직자 서춘환과 공장여공 출신으로 이제는 시집이나 가려는 조애실이 만나 경험하게 되는 6.10항쟁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 표현대로 “다른 근로자 출신 남녀는 성고문을 받는 게 아니라 이성교제를 하고 있었지요. 먹고 싶은 마음, 주고 싶은 마음 써놓은 선전 간판 아래에서... ”말이다.

그들은 어찌되었든 두 번을 만났고 노동자의 사랑 곧 인간의 사랑과 마찬가지라고 결론 내린 그런 이야기들을 공허하게나마 주고받았지요. 서로에게 절망하면서 말이지요. 조애실은 편지에서 상대를, 스스로를 야유하네요.

<‘사람들은 나이 차서 어른이 되었어도 시냇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대하(大河)를 그리워만 하다가 마는 것인가요? 그 여자애는 서춘환의 가슴을 묘하게 건드리는 이런 문학적 표현을 썼었다. 나이 서른한 살이라면 분명 시냇물은 아니고 장강대하에 들어선 것 아닌가? 그런데 “나이 차서 어른이 되었어도 시냇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바로 그 다음 문구가 그의 비위를 뒤집어 놓았던 것인데) “대하를 그리워만 하다가 마는” 그런 인생이 놓인 것이 너 아니냐. 더구나 이 계집애는 독심술이라도 지녔는지 “아 무슨 되다만 문학소녀 같은 넋두리....”>

서춘환은 제 속을 뒤집어 놓은 애실을 만나야 했네요. 뭔가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를 않고 그녀의 사촌동생인 조치현은 동대문에서 선약이 있다면 아마도 그녀는 올 수 없을 것이라 말해주네요. 할 수 없이 그 둘은 구경삼아 남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지요. 함성이 들려오고 ‘따, 따, 따, 따, 다연발 최루탄이 터지고’ ‘시민들은 구경꾼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일 따름이고, 젊음만이 대열을 만들 수 있는가’ 하네요. 그 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범시민적인, 아니 범국민적인 고통의 축제는 마냥 계속되기만 할 모양’이었지요. 누가 사람들을 울게 만드는가. 무엇이 이 고생을 하게 하는가. 어떤 바람과 무슨 보람을 얻으려고 ....’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 혼란, 무질서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런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장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해방을 구가하고 있었다.... 밤길의 사람들 속에 서춘환은 날마다 끼어있었다.’>

'명동은 시민들의 해방공간으로 변해’갔지요. ‘커다란 삼태기에 콩을 잔뜩 담아 까불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게 말이지요. ‘밤길의 사람들은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밤길의 사람들은 어둡고 괴로움에 가득한 표정으로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트네, 이런 노래를 부르며 다녔었’지요. 어둡고 괴로운 긴 밤이 지나 삼천리 이 강토에 먼동이 터오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듯이 ‘밑바닥 노가다 노릇하는 영감쟁이이지만 여기 안오면 안 될 것 같애서 이렇게 와본거야’ 하는 밤길의 사람들이 명동의 밤을 광화문의 밤을 노래하였지요.... 2002년 6월

월드컵이 열리고 있네요.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모두가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몰려나와 ‘밤길의 사람들’이 되어 있네요. 서춘환씨도 그들 중에 있을까요? 꼭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느새 40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겠네요. 조애실과 결혼하여 아이들도 두서넛쯤 낳았을까요? 명동의 밤을 그들의 해방구로 만들었던 386세대들은 이제 이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어 있군요. 아직도 그 날의 이념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거나 극복하지 못한 낡은 이론의 유물들과 싸우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지요.


<‘나는 내 노래 하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거나 할 적에 부르곤 했던 <<작은 세상>>. 그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서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나는 내가 영광스럽습니다. 나 같은 보통 쪽도 못되는 여자가 이러한 역사적인 삶을 가질 수 있다니,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찾아낸 작은 세상,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15년 전 6월은 광화문의 밤을 이렇게 ‘작은 세상’에서 살려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겨우 챙기기 시작한 '집단에 대한 개인'을 스스로 팽개치며 월드컵의 흥분에 빨갱이(Be the Reds)이가 되어 광화문에서 어디에서나 ‘밤길의 사람들’로 살았다. 그 밤의 광분에 묻혀 소리없이 죽어갔던 미선과 효순의 죽음이 이제 다시 광화문으로 밤길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아이러니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광화문이 밤길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을 보면 우리가 꿈꾸었던 <작은 세상>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 아직 오지 않은 작은 세상, 우리가 여전히 잠자지 못하고 밤길의 사람들로 거리를 서성대야 하는 이 슬픈 시대에 어김없이 법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하고 정치인은 ‘내가 적임자에 정직한 사람이라’고 고함을 질러댄다.

봉숭아학당

개그 콘서트라는 모공영방송의 코미디프로는 항시 ‘봉숭아학당’과 함께 끝이 난다. 그 개그콘서트팀의 대부분이 모당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관이다. 그럼에도 내가 2002년 대선의 성격을 논하는 글을 쓰면서 ‘봉숭아학당’을 들먹이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코미디 같은 정치놀음으로 전락해서는 안되겠다는 우려에서다. 강아무개 개그맨이 역할을 맡았던 연변총각은 그야말로 구라(거짓말이라 표현하기에는 그 황당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를 늘어놓는 것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우리 엔벤(연변)에서는 ~”으로 시작하는 그의 황당한 거짓말은 끝이 없고 회를 거듭할 수록 기가 차더니 요즘에는 전혀 엉뚱한 역사적 사실을 우기는 할머니로 변해있다. 그의 개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 개그콘서트팀이 후원하는 모당의 후보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황당한 거짓말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둘러대는 것이나 전혀 사실이 아닌 혹은 확인이 안된 낭설을 천연덕스럽게 주장하는 것이나 꼭 닮은 꼴이다.

근거없는 비방이니 흑색선전이라고 우길 것을 염려하여 실례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후보 합동토론에서 그 후보는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북한이 시인했다는 미국 관리의 말이나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은 있어도 북한이 핵을 보유하였다는 단정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럼스펠트 미국방장관도 자신의 발언이 ‘가능성의 확신’ 정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이미 해명한 바가 있다. 그 후보의 말이 사실이라면(그 후보의 정보 수집능력이 우리의 국가기관이나 미국의 첩보수집능력을 능가한다면) 우리 정부와 미국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국민에 대한 범죄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후보의 말은 유언비어에 해당하고 이는 그 서슬퍼런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사항이다. 법관 출신이니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어제 오마이뉴스 기사에 의하면 그 후보는 2000년 노근리 양민학살과 매향리 폭격장 문제에 대하여 정당한 목소리를 내던 시민단체의 운동을 반미운동으로 단정했었고 이를 비난하였다는 이중적 행보를 보도하고 있다. 똑 같이 미군에 의하여 양민이 죽임을 당한 것인데 선거철이 되어서는 악이었던 반미가 선으로 돌아서고 있다.

그의 우격다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북에 대한 냉전전 자세와 강경대응방안을 보이면서 집권하면 김정일을 최우선적으로 만나고 이 땅의 화해와 긴장완화를 이루겠다고 우긴다. 상대방에 대한 비타협적이고 호전적인 입장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상대방을 협상의 테이블에 끌어 앉히고 설득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안보는 선심성 공약과 보수안정희구세력의 표를 의식한 대결적 자세로 담보되는 것이 아니다.

봉숭아학당의 아이들과 놀다보니 국민들이 전부 그 학급의 맹구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의 주변이 혹 맹구클럽인 줄은 모르겠으나 국민들은 아무도 봉숭아학당에 다니질 않는다. 도대체 제정신을 가진 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명도 안보이는 봉숭아학당에서 구라치고 우기고 엉뚱한 소리 지껄이며 정신 놓고 사는 것은 스스로 한 명이면 족하다. 우리들은 봉숭아학당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그 곳이 바보들과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모여있는 특별학급임을 잘 알고 있다. 이번 대선은 그 천치학급의 반장을 뽑는 것이 아니다. 나이들어 노망끼 보이는 이장님이 한 마디 한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그러자 교련복 입은 갈갈아 삼형제가 화답한다. "개그는 개그일뿐, 따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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