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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용이의 자유생각 > 끌적..끌적..


용이의 자유생각의 끌적..끌적..
페어플레이는 '하수구'의 '쥐'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의 <만물상>에서 '페어플레이'라는 제목의 내용이 적힌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잡다한 얘기를 하다 '우리 사회에서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아쉽다'는 말로 끝맺는 그 글을 보면서 결국에 나온 말이라고는 "정말 개소리군"이라는 말뿐이었다. 왜 조선일보라는 '같잖은' 신문에서 그런 글이 실릴 수 있는 것이며 왜 그 '같잖은' 신문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지역감정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모순을 이야기하면서 언제나 양비론으로 꾸짖는 그 '같잖은' 신문은 딴에는 균형감각을 지닌척 연기를 하지만 그 연기에서 우리가 맡을 수 있는 것은 역겨움 뿐이다. 일제시대땐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화 만세)'를 열심히 부르짖었고 독재정권때엔 더러운 기생의 삶을 살면서 민주주의를 짓밟는 악행에 대해 얼마나 많은 찬양과 선동을 했던 신문이었던가! 그 신문이 이제는 시대가 바뀐것을 알고선 근엄한 모습의 '판단자'가 되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꾸짖는 모습에서는 '하수구의 더러운 쥐'만이 떠오를 뿐이다.

'근엄한 판단자'는 언제나 페어플레이와 용서와 화해 그리고 관용을 즐겨 사용하며 누구나가 쉽게 반박할 수 없는 '도덕 선생님의 말'로 얘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떠한 '더티플레이'를 사용하는지, 어떻게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관용이라는 말은 정의를 부르짖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올때 도덕적 무게와 설득력이 생긴다. 결코 정의가 아닌 기생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함부로 사용할 말이 아닌 것이다. 기생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지난날 민주주의를 위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가 희생당하고, 억울한 옥살이와 고문을 당해 정신이상자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한평생을 한(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것이다. 그네들에게는 그저 더럽고 역겨운 '하수구'라 할 지라도 배부를 수 있는 '쥐'가 될 수만 있다면 그저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상가인 노신은 군벌, 대지주, 정상배, 그리고 외세와 결탁한 매판자본가들의 수탈과 학정과 잔학에 항거하는 민중에 대해서 임어당이 "관용과 타협으로 용서하고, 과거는 잊어버리자"라는 글에 대해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로 "너를 물려다가 물에 빠진 개는 불쌍하니까 때려서는 안된다는 설교와는 반대로, 오히려 실컷 두들겨 주어야 한다. 개가 물에 빠진 것을 세례를 받으러 들어간 줄 착각해서는 큰 일 난다. 고이 건져주면 반드시 너를 물려고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면서 임어당의 '헛소리'를 비판했다. 즉 노신은 페어플레이의 대접은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알고, 그대로 행동한 상대가 아니면 적용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페어플레이'를 부르짖으며 화해와 관용을 얘기하면서 근엄한 '척'하는 '하수구'의 '쥐'에게 이제는 페어플레이 대신 '몽둥이'로 그들을 '두들겨' 주자! 그것이 그들에게 맞는 '페어플레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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