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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에쿠스의 영화이야기 > 지난 글 모음


에쿠스의 영화이야기의 지난 글 모음
K 선배님에게-설악산이야기
선배님,
함께 설악을 다녀온지 어느새 1년이 되었습니다.
다리품 팔며 돌아 본 설악은 벌써 영악한 기억으로 인해 흐려지고
몇 장의 사진만이 그곳을 다녀왔다는 훈장처럼 제 서랍 속에 남아있군요.
선배님한테 느꼈던 고마운 일들,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 위에서 보았던 많은 것들이 지금 다 생각이 나진 않지만
기분 좋게 내 몸에 젖어오던 중청의 밤 안개와
밤바람에 차갑게 시아시된 쐬주...
담채화처럼 명암과 채도를 달리해 존재하던 산들과
곱게 채색된 운해들...
물치항의 횟거리와 택시 안의 노래자락 까지도
마음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같이 산에 올랐던 사촌 동생은 지금 무사히 잘 귀국해서
다시금 미국에서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촌 동생 녀석에게 막연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설악의 한자락에
한국사람의 정이 커다랗게 자리한 듯 싶어 마음이 뿌듯합니다.

처음 녀석이 한국에 와서 저희 집에 왔던 때가 기억 납니다.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녀석은 한국의 한 교회의 초청으로
십 수년만에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1주일 정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친척집인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외국생활로 인해 빠다물 좀 들었으려니 생각했던 녀석은
의외로 순수한 한국인의 모습으로 서투르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더군요.

"형, 보고 싶었어...요"
좀 띈 간격으로 <요> 자를 꼬박 붙여주려는
녀석에게 난, 그 간격만큼의 세월을 느껴야 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타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젊은이로서의 애틋한 뿌리내림이 엿보이는 듯 해서
찔끔하고 눈물이 돌더군요.

선배님이 그때 물으셨지요?
왜 설악에 왔냐고...
난, 그 사촌 녀석에게 뭔가를 담아주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조국이라는 타이틀로 녀석의 기억에 남아있을 모호한 개념들에
순도 높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설악은 좋았지요.
특히나, 백담, 수렴계곡으로 올라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긴 코스 위에서
우연찮게도 백담산장 어귀에서 다리쉼하며 다정스레 얼음물을 건네주시던
선배님을 만나고 너무 놀랐습니다.

지난 동창모임에서 백두산을 오른 감회를 표현하시던
선배님을 설악에서 만나게 되다니...

전, 반가움과 기쁨에 그리고 기꺼이 동행을 허락해주신
넉넉함에 내내 감사했습니다.
사촌과 단둘이 오른 산행의 밋밋함과 버거움 속에
너무나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이죠.

선배님,
중청 산장의 동동주 좋았지요?
제 눈에 맞추어 낮게 내려앉은 별들과
어둑해질수록 색깔을 감추고 수묵화의 농담으로만
차분히 다가오던 각각의 산들도...참 좋았지요?
먹빛이 번지듯...밤도, 술도 그렇게 다가오더군요.


근데 선배님, 그거 모르시죠?
지난 설악행은 사촌의 일과 더불어
제게 또 다른 의미로 남아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는 거...

혹시 기억하세요?
제 의견을 듣고 싶어하시던 선배님께 아무 말씀도
안 드리며 그냥 조용히 웃고만 있던 일...
결국, 선배님도 제 침묵 앞에 화제를 돌리고 말았잖아요.

그건, 물치항의 한 횟집에서 나온 정치얘기였습니다.
특정한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씀하신 선배님에게
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요.

의도된 침묵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전,
횟집 너머로 보이는 깊은 빛의 바다와
위장에 착착 달라붙던 쐬주...
싱싱해서 오히려 걱정스럽던 횟감들이 너무나 좋았거든요.

그 모든 일체감 속에서 전, 선배님이 갖고 계셨을
수많은 논리와 이유들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고
그냥 그림처럼 존재하는 실물들에 취해버려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25도 짜리 쐬주였지요?
혈액을 타고 오는 알콜농도 만큼이나
뜨거운 말들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그날은 그냥 그렇게 있고만 싶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가졌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그 자리에까지 더해서 흥을 깨고 싶지 않았거든요.
또한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사촌의 눈망울 앞에서
내 젊은 시절을 복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의 가치관을 갖지 못한 채 선배님들의 논리와 명분에 휘둘렸던
지난 시절이 생각나서 그냥 마음을 닫고 말았던 거지요.

저도 참 못됐습니다.
그냥 적당히 술기운을 핑계삼아
선배님이 원하신 답을 해드릴 법도 한데
아직도 제 가슴에 자리한 묘한 고집과 서투름이
자리를 잠시 서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선배님,
그후로 일년이 지났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속에서 한번 보자던 약속을
지금껏 지키지 못하고 있네요.

하지만, 근간에 꼭 찾아 뵙고 싶습니다.
선배님과 함께 올해의 설악산 얘기도 하면서
내 가슴속에 담아온 순도 높은 공기도 모두 뱉어내어
선배님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배님께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에 가입했습니다.

이제사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내내 남에게만 가로젓던 고개짓이 결국은
어느 누구의 쉼도 허락치 않은, 가시만이 남아있는 선인장의 몰골로
나를 만들어 놓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만큼 다리쉼을 한 다음인데야
괜찮은 꽃도 하나 피울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제는,
선배님의 <지지한다> 와 저의 <사랑한다>를 두고
한 껏 술내기를 해야 할 일만 남은 듯 합니다.


날이 덥습니다.
턱밑까지 차오른 열기와 습도가 부담스럽군요.
한 사흘쯤 장대비가 내려주면 좋으련만...

참, 선배님...술은 제가 준비합니다.
그러니, 담가놓은 술 축낸다고 타박하지 마시고
형수님의 자랑이라시던 김치전과 부추전 기대합니다.


다시 설악을 다녀와
후배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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