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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에쿠스의 영화이야기 > 칼럼방


에쿠스의 영화이야기의 칼럼방
'영광의 길'을 가다
1.

집단의 불의와 싸우는 영웅을 그린 모습은 영화상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주인공은 거대한 골리앗과의 싸움 속에서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결국은 극적인 승리를 이끈다는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은, (구태의연하
고 정형화 된 얘기긴 하지만 잘 다듬은 영화의 경우에 )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함께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그런 영화같은 일들은 현실 속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를 모함하는 자들의 싸움 말이다.

꼭, 그걸 싸움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종의 전투적 개념으로 인식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사실인 듯 하다.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 다녀도 부족한 판에, 팔짱을 끼고 나앉아 있다가 선거의
패배가 확인되자마자,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주장하며 신당창당입네 어쩌네 하며
벌어지는 민주당 내의 이 코메디 같은 일들은, 사뭇 그들에게는 정치생명을 건
모험일 수도 있을 테니 싸움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비장하게 전투라는 말이라도
붙여주는 게 낫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에 헐리우드의 서부영화를 많이 보고 자라긴 했지만
영화 속 우리의 주인공은 악당들을 물리치고 잘도 승리를 거머쥐던데,
전투를 벌일 사람 앞에서 같은 편끼리 내분이나 벌이고 있으니
이는 'OK 목장의 결투' 아니라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무현 후보에게 차라리 '하이눈'의 보안관처럼 마을을
혼자 지키겠다고 나서지말고, 보안관 뱃지 내팽개치고 딴 마을로 이사가라고
권하고 싶다.


어쨌든 간에 근간의 민주당 사태를 지켜보며 분통만 터뜨리다가 생각나는 영화가
하나 있어 간단히 소개를 좀 하려고 한다. 물론, 보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안보신 분들께서는 이런 꿀꿀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진통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하다.




2.

요즘엔 좀 한물 갔지만 한창 잘 나갈 때가 있었던,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영광의 길(Paths od Glory)' 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그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57년도 작품으로 흑백영상이지만
지금의 영화기술에 전혀 뒤지지 않는 촬영기법과 놀라운 연출로 전쟁의 이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도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
이라고 하니 대충 어떤 류의 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맞다.
지극히 반전적이고, 반국가적이며, 반애국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룬 험프리 콥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10년 동안 개봉이 금지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분위기나 잡는 어려운 예술영화는 아니지만 이해하기는 쉬우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단, 간단히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면,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은 개미고지의 탈환을 명하고, 사단장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부하들의 희생을 감안한 무모한 작전을 감행한다. 작전수행 중 프랑스군은
엄청난 희생이 생기고,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군인들이 적진으로의 공격을 거부한 채
참호를 떠나지 않자, 사단장은 부하들이 있는 참호를 향해 발포할 것을 명령한다.

결국, 이러한 내분 속에서 고지탈환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작전의 실패에 대한
희생양으로 각 중대 당 한 명씩 착출당해 군법회의에 회부되게 된다. 군 입대 전
유능한 변호사였던 덱스 대령은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변호를 자임하는데...


즉,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덱스 대령과 군 상부의 대립을 다룬 영화로
작가주의 감독인 스탠리 규브릭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그런데 이 천재작가의 영화적 상상력은 50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이 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민주당에 갖다 붙이면 말 그대로 딱 들어맞는다.

전투의 패배를 무마하기 위해 대국민 언론대책용으로 무고한 병사들을 사형시키려는
사령관과 그들을 변호하는 덱스 대령의 대결은 선거의 패배를 이유로 노후보의
희생을 요구하는 민주당 꼴통들과 딱 닮아있다.

민주당의 그 분들(?)에게 덱스 대령이 한마디 한다면
'애국심이란 건달들의 마지막 피난처 ' 라고 통렬히 쏘아 붙일텐데...
(영화 속에서 새뮤엘 존슨의 말을 인용했다.)


어쨌든 덱스 대령이 주장했듯이 전투의 패배는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살벌한 고지탈환의 과정에 단지, 대령 혼자 분투하는 그런 전투에서 어느 누가
승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출세에 눈이 먼 사단장이 그러한 상황에서 취한 행동이란 어이없게도
아군진지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는 군인들에게 폭격을 요청한 일 밖에는 없었다.

그러한 황당한 전투 끝에 덱스 대령은 '적과 맞설 용기부족'으로 피소된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군 재판정에서 이렇게 항변한다.

"어제 아침의 전투는 결코 프랑스군에게 오명이 아닙니다.
또한 치욕은 더욱 아닙니다. 바로 이 재판이 오명이고 치욕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사형에 처해지게 되고, 총사령관의 사단장 임무 제의를
거부한 덱스대령은 다시 부하들을 이끌고 전방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협을 거부한 채, 전방으로 떠나게 되는, 이 참담한 출병에
바로 감독의 마지막 의도가 숨어있다.

즉, 그가 걷는 영광의 길이란, 전투에서 상대 병사를 죽이는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을 걷는 것임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3.

지난 토요일, 유시민씨의 강연을 들었다.
운동장 안에서 공공연하게 반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설만 할 수는
없었다는 그의 강연에는, 국민후보 지키기 시민운동의 명분에서부터 날카로
운 정세분석 , 향후의 자신의 활동에 대한 얘기까지 진지한 고민과 뜨거운 열
정을 담아내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분명 그의 모습에는 건달들만 판치는
세상에서 만난, 참으로 당당하고 시원한 소리들이 녹아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그에게 싸인을 받으려고 노트를 슬며시 내밀었다.
그는 내게 이름을 묻더니 , 이렇게 써주었다.

'생각은 힘이 세다.'


내가 만난, 또 한 사람의 덱스 대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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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님을 닮아 글도 아름답네요..^^;;
마르스(2002-09-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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