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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온라인의 몰상식과의 전투벙커의 칼럼방
노무현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이다.
노무현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노무현이 보이는 일련의 정치적 순발력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 혼란은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수용할 수 없다고 공언한 후, 최근에는 오히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하여 오해를 무릅쓰고 집중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그간 노무현을 상징하는 라벨은 "원칙과 상식"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노무현의 성과이자 한계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전적 의미의 "원칙과 상식"은 양날의 칼이다. 한국의 정치인에게서 "원칙과 상식"을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는 생각이 통념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무현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비토 세력들은 그의 시기적 전술마저도 '야합과 몰상식'으로 재단하기 바쁘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에게 있어, 고착된 이미지는 자체로 딜레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노무현의 단일화 행보를 바라 보면서, 기존의 노무현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원칙과 상식"이라는 프레임 만으로 노무현을 이해하려 했을 때, 누구나 서슴없이 이분법의 통제 아래 놓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매니아나 반대자는 제외하고서 말이다.


노무현을 바르게 바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바로 역대 대선 속에서 노무현이 느꼈던 현실적인 고뇌와 선택을 되짚어 보면, 노무현이야 말로 전형적인 실용주의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은 매 대선 시기마다 개인적 명분보다 공익에 근거한 현실적 선택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즉, 민주화 세력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선에서 자신의 주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신축적인 판단을 내려왔다.


87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김영삼을 지지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모태가 상도동에서 시작된 측면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김대중의 면면을 확인하기 전이었으므로, 일반적인 부산인의 정서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때였다. 국민적인 열망이 군부 독재의 종식에 모아졌던 87년의 정서에서, 아직 의회에 진입하기 이전의 노무현이 선택할 수 잇었던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지역적인 정서와 국민적 요구에 부응했던 시기였다.


망국적 3당합당에 대한 반기를 곧추세운 노무현은 소위 꼬마 민주당의 맹장이 된다. 그리고 당시 민주당과의 전격적인 합당에 근거하여, 노무현은 민주당에 합류하게 되면서 정치적인 고난기와 성숙기를 동시에 맞이한다. 물론 꼬마 민주당 시절의 노무현은 철저한 3김 청산론자였다. 87년 분열상의 근원이 3김식 붕당 정치에 있다고 생각한 노무현은, 대선을 앞둔 야권의 난립은 독재 연장 세력의 연장에 기여할 뿐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하게 된다. 결국 9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김대중을 지지한다.


김대중의 정계 복귀는 노무현에게 또다른 선택을 강요한다. 위에서 보았듯이 노무현은 시종 통합을 우선시하는 정치인이었다. 신의에 기반하지 않는 사당 정치를 기획한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국민회의 분가에 반대한 것이다. 노무현은 몇몇 동료 의원들과 함께 3김 청산과 세대 교체를 목표로 통추를 구성하여 야권 통합에 매진한다. 그러나 지역에 기반한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통추의 역할은 지극히 한게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97년 대선 정국이 도래했다. 통추 내부에서도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인제는 신한국당의 당내 경선에 불복하고, 3김 청산과 세대 교체를 이야기하며 선거전에 뛰어든 시기였다. 노무현과 통추는 당연히 정권 교체와 세대 교체 중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통추의 중론은 정체성에 맞게 이인제에게 기우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 노무현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독자 출마 선언이었다. 세대 교체와 3김 청산의 자격을 물으며, 이인제의 허구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분열될 조짐을 보이는 통추의 물굽이를 반전시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통추의 중견이었던 이부영과 제정구는 신한국당에 입당하고 만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인제의 바람을 잠재우면서, 정권 교체라는 대승적 과제에 자신의 개인적 소신을 유보한 것이다. 당시 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노무현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김대중(?)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정권 교체의 대의에 공감해서 입당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껏 반쪼가리 프레임으로 노무현을 바라 보았던 것이다. 결단의 순간마다, 노무현은 선명한 분리보다는 공생의 화합을 중시하였다. 개인적 소신만을 우격다짐하지 않았으며, 비록 차선일 망정 합리적인 결단을 실천하였던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역정에서 보듯이, 소신을 훼손을 감수할 지언정 소신을 팽게치는 극단을 선택한 경우는 없었다.


노무현의 브랜드인 "원칙과 소신"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속에서 빚어진 그의 얼굴이다. 역대 대선 과정에서 때로는 우직한 길을 때로는 현명한 길을, 다수의 염원 속에서 고민하고 밟아 온 그만의 Know-how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현재의 후보 단일화 논의를 바라 볼 수 있다면, 이 글은 삼류 소설보다는 조금 쯤은 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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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도 윗분의 생각과 같은 의견입니다..단일화협의는 스스로의 결단이라고 보기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탈당소식과 자신의
지지세력에 대한 책임이라고(?)생각되어집니다..지금 제가 고3인데 제가 보기에도 노 후보의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걍...(2002-11-23)
3 number 1..
No. this paragraph is true. Roh is not God of rule. He wants to win for you and himself. If he win,
his rule is not hurt. He thinks he will win in the unity.
So he suggested all. But there is a possibility to lose.
He believe very much the people that supports him.
I think all his thought is not right. Anyway his brave
tactics lighten to people. He will win in the unity.
He is very smart and clever as a politician.
heartist(2002-11-22)
2 왜 노무현을 실용 주의자 라고 하는가? 어찌 보면 그는 한낮 명예에 굴하는 자가 될지도 모른다..
들렸다..(2002-11-22)
1 노무현의 단일화 협의 선택을 꼭 실용주의에 입각한 스스로의 결단이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요구와 의원들의 탈당 러시를 막는 옵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 최후의 결심 밑바탕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온정이 큰 무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현실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지나가다(200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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