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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일모도원의 오징어 > 낮은 풍경


일모도원의 오징어의 낮은 풍경
정치 부실사태를 고발함
단 두개의 정치 성향이 있을 뿐이다. 반DJ와 반창. 안타깝게도 반일 자존의 시절을 경헙했던 우리가, 반독재 민주의 시절을 겪어봤던 우리가 오늘날 이룬 정치라는 것이 꼴란 반DJ와 반창일 뿐이다. 예전처럼 자존과 민주의 지향이라는 꿈도 없이 말이다. 예전처럼 자존과 민주라는 국민 통합의 지향도 없이 말이다.

나름대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반DJ. 단 한번의 왜곡으로도 기정사실화되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했던 반DJ 정서의 이유들을 보노라면, 단지 싫어하기 위해 싫어하는 이유를 찾는 비상식을 느끼게 한다. 반대하는 한 지점을 두고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 수혜자를 낳았고, 언론의 가면을 쓴 사적 탐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절반은 DJ덕에 먹고 사는 꼴이기도 하였다.

반DJ라는 정치성향은 폭넓게 응용되는데, 탈DJ라는 정략적 제스처도 그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단지 DJ가 아니다, DJ와는 다르다는 것만으로 득표의 효력을 기대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희안한 형국이다.

우울한 대통령 DJ. 그의 정치철학과 공헌이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굵고 무게있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싸워왔던 적이 독재와 반민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척함으로 인해 수많은 특혜를 기대할 수 있는 모순의 존재다. 군부의 잔당도, 독재의 치부로 아직까지 세를 누리는 잔재들도 반DJ라는 정치성향만으로 오늘 이 시대에서 용인되는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무도 그의 공과를 짊어지지 않는다해도, 내 기억을 기꺼이 할애해서 그를 기억하리라. 그와 그의 적들과 그에 의해서 형편이 나아진 이들과 그를 팔아서 제 배를 불린 모리배들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DJ의 지향 이상을 그들이 세우는 지 어쩔 지를 목격하고야 말리라. 그리하여 수십년이 흐른 후 아무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 다시 DJ와 그의 사람들을 증언하리라.

분수에 넘치는 대접이상의 의미가 없는 반창. 역사에 어떠한 공헌도 없이 기생하며 살아온 가족사와 개인사에 비해 지나친 대우를 의심하지 않고 있는 반창의 기류또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긴 마찬가지다.

단지 반DJ의 수장이라는 이유뿐만으로 반창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른바 수구에 대한 반대가 반창의 이유라면 지금 반창연대는 아주 잘못되었다.

창 자신의 정 치 사상이 수구 이데올로기를 주도하지도 못하고 있으며(오히려 시키도 지시하는 대로 움직일 뿐), 창의 진영에 펼쳐진 스펙트럼은 수구에서 보수까지 심지어 개혁을 주창하는(말로만? 혹은 말뿐이더라도) 무리까지 다양하다. 그 다양한 무리의 공통점은 집권욕이라는 목적성과 반DJ라는 수단외에는 없다.

개혁과 보수의 대결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권력 장악을 위해 개혁도 보수도 불분명하게 혼재되어 있을 뿐이며, 반창이라는 이유만으로 개혁인지 보수인지 불투명한 인사들, 무리들과 연대 및 단일화를 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볼 수 있으면, 반창이라는 것이 허구라는 것도 느껴야 한다. 집권을 위한 무리들의 싸움일 뿐, 개혁성과 개혁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 "단일화"라는 개념이 반창이라는 정치 성향의 유일한 산물이며, 반창이라는 격에 넘치는 대접에 일조하고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창 자체로 지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적 기류의 형성은 애초에 불가능하였다. 전통적인 반DJ 정서를 기본 수단으로 삼고, 끊임없이 "대세론"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시도하였다. 대세론이 없이는 창을 중심으로한 집권욕의 집합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대세론은 "반창"이라는, 지금에와서 "반DJ"라는 성향에 버금가는 허구적 실세를 만들고야 말았다.

자문해 봐라. 무엇을 위한 "단일화"였던가, 무엇에 대한 "단일화"였던가를. 창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창을 꺽기 위한 단일화라는 답외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왜 극복해야할 "대세론"의 사생아에 길들여지고 말았는가.

현대사에서 이루어 놓은 정치적 자산을 어디에 팔아먹고 지금 남은 것이 "반DJ, 반창"이라는 조악한 화두뿐인가. 이런 정치적 부실 사태에 왜 아무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집권 대결에만 계산을 몰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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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를 추가한다]

1.
초기 정몽준의 높은 지지율은 반창과 반DJ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반창과 반DJ에서 자유로웠던 것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정몽준 지지율의 급락은 정몽준 자신이 반창의 기수를 자처했을 때,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때리기가 DJ양자를 내용으로 할 때였다. 우리 정치에서 "신선함"이란 반창과 반DJ가 아닌 그 무엇이었던 것, 우리가 정책대결이라 부르는 이상적인 그 어떤 모습속에 존재하는 "자유로운 정치 형태"가 아니었을까.

2.
지금 우리 정치의 작은 성과들, 민노당의 약진이나 계파 정치를 극복하였다거나 하는 무시못할 가치들을 위해서 글의 서두를 이렇게 바꾸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오늘날 우리에게는 두개의 커다란 정치 부실과 몇개의 작은 희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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