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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의 함께 이 길을의 칼럼방
역할에 관한 단상 - 3 ( 개혁적 국민정당과 정정당당 )
게놈 프로젝트라고 있지요. 인간 유전자의 배열을 알아내겠다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한 일인데... 결과로 인간 유전자의 염기 배열 순서는 알았지만, 막상 할 일은 이제부터라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유전자 배열 순서를 알아내고 보니, 무얼 하는지 모르는 부분으로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전혀 그 특성이 발현 안 되는 부분이 더 많더랍니다. 어떤 과학자는 "인간 유전자는 박테리아로부터 인간까지로 진화해 온 과정에서 얻은 모든 잠재적 능력을 다 가지고 있다. 마치 수억년을 쌓아두고 청소 안 한 창고 속과 같다"라고 말하더군요.

비유를 들자면 인간 유전자의 대부분이 정규군이 아니라 예비군에 속하고, 그건 전쟁이 터져 봐야 어느 병과에 속하고 특기가 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유전자 배열 순서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어느 부분은 왜 활성화되고, 어느 부분은 왜 안되는가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 열쇠는 아직 전혀 못 찾아내고 있으니, 게놈 프로젝트가 쏟아 부운 돈과 노력을 뽑아내려면 시간이 한참 더 걸리려나봅니다.

유전자에 대한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유기체는 여러 가지로 여유를 두고 주변의 환경에 대응합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 몇 백만년, 몇 천만년에 한 번쯤 올 수 있는 환경 변화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준비들을 유전자 내에 감춰두고 있으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종만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는 거죠.

이런 것은 한 개체가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상황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인간 뇌의 각 부분은 평소에는 하는 일이 엄격히 분화되어 있지만, 뇌출혈 등으로 뇌의 일부분이 죽으면, 죽은 부분이 하던 일을 주변의 부분들이 조금씩 떠맡게 되어 뇌출혈 직후에는 거의 파괴되었던 언어 능력, 운동 능력 등이 원래 만은 못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되는 것이지요. 이건 뇌와 같이 생명에 치명적인 일을 담당하는 부분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육도 어떤 동작을 주로 담당하는 주동근과 이를 보좌해서 동작이 매끄럽게 일어나게 하면서, 주동근이 다쳤을 때 예비군 노릇을 하는 보조근으로 이루어져서 여유가 있는 구조를 가지죠. 또, 인체에서 문제가 생긴 부분에 제일 먼저 도달할 수 있는 혈액 세포의 경우, 다른 종류의 세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죠.

뭐, 이런 식으로 예를 들면 한도 끝도 없구요, 결론적으로 생명체의 구성 조직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가지 역할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예비 능력이 있어서, 히딩크 축구에서 강조하던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 소화능력을 처음부터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반면에 기계는 각자 설계된 자기 임무만을 담당하는 부품들로 이뤄져 있지요. 아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소한 부품 하나의 고장으로도 전체가 기능이 마비되고 맙니다.

인간의 사고 방식은 여러 가지로 과학 문명의 발달의 영향을 받습니다. 다아윈의 진화론이 사회 과학 쪽의 여러 사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 대표적으로 거론이 되곤 하죠. 현재 우리의 사고 구조의 상당 부분은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고, 내연기관, 자동차 등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기계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혈액 순환을 심장이라는 펌프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그런 예 이지요. ( 사실 혈액 순환은 모든 혈관의 반사 동작이 주가 되는 것으로 심장에서 시작된 파동이 모든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개념에 더 가깝답니다. 심장의 펌핑 만으로 모든 혈관의 마찰 저항을 이기고 피를 돌리려면 심장이 지금보다 수십 배 강해져야 하죠 )

이런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세상의 운영에 있어서도 분업의 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찰리 채프린'이 만든 유명한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보여주는 거대한 콘베이어 벨트 주위에 달라붙어서 열심히 단일 작업만을 반복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식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죠. 이런 식으로 "효율!!! 효율!!!" 해가면서 몰아붙여 봤는데... 결국은 그게 효율적이지 않더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죠. 어느 한 쪽의 사소한 문제가 전체에 파급되는 영향이 너무 크니까... 그런 곡절 곡절을 거쳐서 인류가 도달한 2002년의 세계라는 게 퍼지 이론이니, 자체 진단 시스템이니, fault tolerant 씨스템이니 하면서 생체 모델을 흉내낸 방식으로 점차 전환을 해 가는 시대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세계적인 조류를 못 따라가고 여전히 분업의 논리가 철저히 적용되는 분야를 하나 들자면 그게 바로 정치죠.

한 때는 정치란 신분이 높고 지엄하신 분들만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위로의 분화가 이뤄졌습니다. 아직도 이런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으면서, 동시에 아래로의 분화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즉, 정치란 어느 정도 뻔뻔하고 사기꾼 기질도 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천한 것들이나 할 일이지, 점잖은 사람이 할 일이 못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는 거죠. 이래저래 마치 조선시대에 '소, 돼지 잡는 일은 백정만 하는 일이다' 하듯이 신분 계층에 따른 직업군처럼 남아있는 것이 정치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부품 하나가 고장나면 전체 기계가 서버리는 것처럼, 정치가 정치 혼자 놀고 있으니까, 외부적 완충 장치가 없으니까, 정치가 엉망으로 갈 때는 대안이 없습니다. 혼자서 부패되었다가, 좀 나아 졌다가 하면서 열심히 나라를 말아먹고 있었죠.

노사모의 등장과 발전은 이런 일반론을 깨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원홍씨가 노사모를 룸펜 집단이라고 비방했을 때, 제가 "박원홍씨 당신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룸펜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정치가가 정치가로서의 일을 제대로 못하고 룸펜처럼 지내니까, 일반 생활인들이 정치에 관여를 하게 되는 것이라는 거죠. 즉, 뇌출혈로 뇌의 한 부분이 죽어서 그냥 놔두면 식물인간이 될 판이니까, 뇌의 나머지 부분인 시민 세력이 관여를 하고,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죠.

이 번에 유시민씨가 '개혁적 국민정당'의 창당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또, '즐거운 정치를 위한 시민 네트워크'라는 기치를 내걸고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이 출범합니다. ( 솔직하게 밝히자면 저도 정정당당의 출범을 돕는 일에 좀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 과거의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이 둘 다 그렇게 곱게 안 보더군요. 전자 쪽은 "유시민이 정치적 욕심을 들어내는 구나"라고 하고, 후자 쪽은 "일반 시민들을 다 정치에 끌어넣어서 어쩌려고 하느냐?"라고 합니다. 우리 그런 퇴행적 시각을 버리고, 요즘 각광을 받는 사회유기체론적인 시각으로 좀 봅시다.

'개혁 신당'은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것입니다. 히딩크 축구의 위력이 비로소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일반 생활인들이 생활을 하며, 동시에 정치를 합니다. 정치 기능이 고장이 난 것을 수리가 될 때를 마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 기능으로 대처하는 것이지요.

'정정당당'은 시민 사회 전체가 정치 상황에 대한 적응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콘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열심히 너트를 조이다가 결국은 휴식 시간이 되도 계속 너트 조이는 동작을 하는 팔을 멈추려고 애쓰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프린'의 모습처럼 한 포지션을 지독하게 반복 훈련시켜서 아시아 축구에서 행세를 하던 전근대적 축구 훈련 방식을 버리고, 히딩크 식의 즐거운 축구, 즐거운 훈련을 하자는 것이지요. 이를 유소년 축구, 아마츄어 축구에 도입하는 것. 그것이 '정정당당'입니다.

이 두 가지 시도가 자리를 잡게 되면, 비로소 우리나라 사회가 유기체적 구조로 한 단계 성숙하게 되겠지요. 한 두 사람의 정치인의 부패, 한 두 정파의 이권 다툼으로 나라 전체가 휘둘리는 후진적 정치 풍토를 벗어나려면, 빙하기 한 두 번에 전부 멸종되어 버린 생물종과는 달리 여러 번의 기후 변동을 뚫고 살아남은 인간이라는 종에 어울리는 사회 구조를 가지려면, 우리의 생물학적 유전자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유전자도 여유분이 필요합니다.

정치가들에게만 정치를 맡기는 고도 분화된 구조는 언제 멸망할 지 모르는 위험한 구조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는 구조, 그들 중의 일부가 필요하면 정치에 바로 투입이 될 수 있는 구조. 이게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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