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로그인회원가입 마이페이지사이트소개사이트맵English
 
 
회원게시판
베스트 뷰
제안비평
 
내가 쓴 뉴스
노무현과 나
언론에 말한다
정치 비판
정책 제안
지구당 뉴스
시민사회단체 뉴스
전체 뉴스 목록
 
Top 칼럼
전체 칼럼니스트
독자와의 대화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임흥재의 세상구경 > 그 여행의 기록


임흥재의 세상구경의 그 여행의 기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2
-정몽준의 축구공은 팬서비스용 모조품이다.

조세희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2편은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류의 소설들과 더불어 산업화와 더불어 급격히 해체되고 몰락해가는 ‘가지지 못한 자’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난장이네로 묘사된 영희네 식구들은 이른바 도시빈민계층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철거되는 삶의 터전,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 수준, 열악한 작업 환경, 가진 자의 억압과 술책 등 당시(70년대) 사회의 모순을 짊어진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이 불현듯 다시 읽고 싶어졌다.

2002년 6월의 화두는 작은 공(축구공)이었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은, 한 때는 감히 생각의 영역에서 까지 금기시 되던 ‘붉은 광장’이었다. 너도 나도 빨갱이(Be the Reds)가 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 속에서 시간마저 정지한 듯이 보였다. 시계의 태엽이 다시 풀리고 벌써 두 달여의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우리들은 차츰 현실의 세계로 복귀하였고 일상의 분주함으로 그 기억들은 그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하며 또 다른 행복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도 그 축구공을 가지고 관중없는 그라운드에서 노는 것도 지겨웠는지, 아무데서나 아무에게나 축구하자며 졸라대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에 얼마전 연임 되었고 여전히 대한축구협회장이란 자리도 고수하고 있다. 또한 4선째인 국회의원직도 유지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의결권 없는 사주형 주식 빼고)로서 증시가 별볼일 없는 현시가로 쳐도 1800억원이 넘는 재산을 소유한 거부다. 서울대 출신에 MIT석사에 존스 홉킨스대의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으며 울산대의 재단 이사장이다.

분명 축구선수는 아니다. 그런데도 연일 축구하자고 국민들에게 성화다. 아니 6월의 그 빛나는 성과와 국민들의 환호성이 자신의 것이라고 우긴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치고는 국회보다는 거의 대부분을 축구회의장이나 다른 볼 일로 나다닌 것이 훨씬 많은 그에게 언론들은 아무런 정치적 검증도 없이 유력한 대선후보로 만들어 놓았다. 정경유착으로 천문학적 부를 챙긴 아버지 밑에서 그냥 줍다시피 얻은 부와 그동안의 삶, 축구협회장하며 돈 좀 쓴 걸로 그냥 무임승차한 잠재적 대선후보의 자리, 그대로 정몽준 인생의 항등식이다. 잠시 정몽준을 잊고 다시 영희네 식구들의 공간으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통장이 이걸 가져 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戒告狀)이에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 <중 략> ==============================
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으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마, 영희야” 큰 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꼭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

70년대 산업화는 농촌의 피폐화로 이어졌고 급격한 도시화는 중심가의 마천루가 솟는 만큼 도시빈민의 열악한 삶과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재벌들은 바로 이런 도시빈민들의 노동의 착취 위에서 부를 축적했고 정통성 없는 정권은 개발의 미명하에 일부 계급에 편중된 부의 집중을 용인하면서 서민 노동자의 참담한 생활의 악순환을 강요하였다. 영희네 난쟁이 가족이 삶의 보금자리로 부터 쫓겨나고 그 자리에 현대 아파트가 세워지던 그 시절에 정몽준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미국 유학중이었을 것이다. 고학생의 힘에 겨운 유학시절이 아니었음은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영희가 개발업자에게 능욕을 당하고 난쟁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투신 자살하던 그 시간에, 영희가 ‘꼭 죽여’하며 분노에 치를 떨던 그 대상으로서의 부모를 둔 정몽준은 재미난 소일거리를 찾아 메사추세츠 에비뉴의 밤거리를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국의 낭만이 흐르는 그 곳에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를 잘 둔 덕에 그가 부자인 것은 나무라거나 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주어진 부’가 그리 자랑스러운 것은 더욱 아니다.

200억의 어마어마한 전재산을 수재의연금으로 내놓은 한 독지가의 미담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의 부가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그가 평생 안먹고 안쓰며 모아온 돈이라는 데에 있다. 정몽준이 그렇게도 이 땅의 정치가 걱정스러우면 의결권을 정지시켜가며 그 재산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정치발전기금으로 내놓고 대선에 임한다면 나는 그의 대권꿈이 훨씬 수월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 고정주영씨는 정치헌금으로 부를 쥐더니 자신에게 부정한 돈을 요구하던 꼴사나운 정치인들을 단죄하겠다고 일갈하며 92년 몸소 대통령후보로 나섰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여 본연의 책임을 다했다면 현대가가 저지른 재정위기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국민들의 억울함은 없었을 것이다. 있는 돈도 주체 못하는 지경에서 형제들간의 밥그릇 싸움이 없었더라면 평생을 현대에 몸바쳐 일하던 노둥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은 정몽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이 터져라 눈물을 훔치며 성원한 국민들이, 별로 가진 것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래서 가짜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몸짓으로 공을 차는 선수들에게서 겨우 사는 맛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만든 작은 성공이다. 비록 정몽준이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으로서 대한축구협회장 겸 월드컵조직위원장으로서 월드컵의 성공에 공이 지대하고 그가 출연한 돈이 그 밑바탕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동안 현대가가 저지른 부정한 정경유착과 노동자 서민들이 가져야할 부를 가로챈 지난 날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것으로 그는 생각하여야 한다.

수구 언론이 신기루처럼 퍼뜨린 그 거품인기가 진정 자신에 대한 기대라고 정몽준은 착각해서는 안된다. 정몽준에 대한 여론조사의 기대치는 단지 지긋지긋한 이 나라 정치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회의일 뿐이고 수구(한나라당)와 부정부패(민주당)에 대한 역설적인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 백번을 양보하여 그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을 말릴 수 없다한다면 그는 우선 자신의 정치적 비젼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

지금처럼 아무데나 뻥뻥 내지르는 삼류 축구선수처럼(그런 축구는 유치원생도 한다) 통합개혁신당 원내정당 운운하며 연예인 흉내를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치솟던 축구선수들의 거품 인기도 가라앉고 있는 형국이다. 올림픽 대표팀의 거듭되는 졸전에 당장에 K리그를 찾는 관중이 격감한 지난 주말을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고 어영부영 시간끌기작전으로 엄한 데 신경쓰기 전에 축구협회의 난맥상부터 해결해야 한다. 박항서코치와 조중연전무로 불거진 축구협회 꼬라지를 보면서 누가 그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 기웃거리고 자민련에 추파 던지며 손내밀지 않는 한나라당에게 연서를 보내기 전에 정몽준은 자신의 정치와 정치적 생각과 통치의 비젼을 먼저 다듬고 꾸미고 만들어야 할 일이다. 이제 축구는 잊어야 한다. 축구는 스포츠일 뿐이고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다. 또한 그 스포츠라는 것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은 이기고 짐이 가변적인 스포츠에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길 의사가 전혀 없다.

이 나라의 운명은 져도 괜찮은 축구 같은 것이 아니고 지고 나서도 다시 이길 수 있는 운동경기 같은 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것은 곧 망국이다. 초등학교 축구팀의 지도자도 자신의 지도철학이 있는 것인 바,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을 언감생심 욕심내는 인사가 뚜렷한 정강정책이나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도 없이 대선에 나서고 국회의원들 꼬드기고 끌어모아 정당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한 짓이다. 현대 때문에 전혀 현대적이지 못한 정경유착 등의 부정적 결과로 일었던 우리들의 분노와 고통은 이제 그만 중단 되어야 한다.

난장이네 가족의 싸움은 패배한다.(구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 빈민의 자식들은 노동자로 편입된다. 까만 쇠공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간(벽돌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은) 난쟁이의 자식들은 각각 은강자동차, 은강전기 제일공장, 은강방직 공장에 취직한다. 대부분의 우리 서민들은 세습된 부가 없어서, 우리를 뒤봐줄 빽이 없어서, 군대 안가도 되게 만들어주는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서 그렇게 노동자로 장사치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별볼일 없는 우리들이 가진 사랑은 소위 정치권에서 저마다 잘 난 그들보다 훨씬 크고 값지다. 그런 점에서 요즘 이름 날리는 정상배들이 오히려 난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가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 했다”는 영훈의 독백이 우리들 서민들의 마음이고 그 사랑 덕분에 벌써 망각의 묘지에 묻혔어야 할 난쟁이 정치인들이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것이다. 정몽준에게 손쉽게 얻어진 부와 그 부를 통한 집권의 야욕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끄러운 것인가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지금 그가 국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찰 수 없는 ‘모조품 축구공’이 어떻게 다른 지를 영수의 말에서 느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아버지는 그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불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으로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까지 머물게 한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500자 짧은 답변 달기

작성자
email
답변내용
암호


copyright(c) 제16대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