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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웹진 > 네티즌 칼럼 > 임흥재의 세상구경 > 그 여행의 기록


임흥재의 세상구경의 그 여행의 기록
다시 식민의 백성으로 살려는가?
다시 식민지 백성으로 살려는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 했던가? 대선을 80여일 앞 둔 2002년의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은 아닌 듯 하다. 먹장구름과도 같은 무거운 근심이 우리네 가슴을 내내 짓누른다. 120년전 임오년이나 2002 임오년이나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기는 매일반이고 힘없는 우리네 백성들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에만 눈이 벌갠 탐관오리(정상배)들의 등살에 산다는 것이 곧 고통이다.

120년전 임오년에는 역사책에 ‘임오군란’이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하급군인들의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한 기층민중의 저항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그것은 개항 후 최초의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내건 역사적 저항운동이었다. 임오군란이 현재적 의미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이 민중의 저항운동의 실패가 곧 서구열강들의 한반도 침략의 빌미가 되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우리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무능력한 정권이 택한 해결의 방식이 외세에 의한 자국백성의 탄압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우리의 강토가 오랑캐의 말발굽에 능욕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임오군란으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대원군이 불러 들인 청의 군대는 오히려 이 땅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대원군 자신을 납치하여 본토에 감금하였다. 자국민 보호를 핑계삼은 일본군의 주둔을 합법화 시켜준 제물포조약은 일본의 대한 침략의 명분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청나라의 정치적 계산과 대륙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일본의 야욕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청이 강간하고 일이 겁간하고 러가 윤간하고 영이 화간한 이 나라와 백성들은 더럽혀지고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한과 증오를 삼키며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다.

건곤일척의 마지막 저항, 동학혁명의 꿈도 일본군이 내뿜는 포화 속에서 스러져갔다. 사람이 곧 하늘이었기에 그들은 하늘로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인내천의 꿈이 이국군대의 총탄에 맞아 깨어지면서 세상은 온통 이국 앞잽이들의 천국이 된다. 친일파 친러파 등등 자신의 정권을 위하여 너도 나도 앞장서 이국군대의 군견들이 된 자들은 제 주인을 물어 뜯으며 으르렁댔다. 그렇게 조선은 대한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을사년, 우리는 식민의 노예문서에 서명함으로 경술국치에 앞서 우리의 수치를 세계에 알렸다. 그래서 ‘을씨년스럽다’는 형용사가 우리말글에 새로 생겨났다. 오늘의 정치판을 바라다보면 나는 을씨년스러운 그 분위기에 소름이 끼치고 오금이 저린다. 악랄한 일본검찰의 하수인이었던 아버지를 둔 모당의 후보는 실성한 부시의 일방주의에 힘입어 이 땅에 왜 전쟁이 터지지 않나 고민중인 듯이 보인다. 일본을 찬양하고 독재를 추앙했던 수구언론들은 근거없는 소문들을 더 크게 실지 못해 아우성이다.

반노니 비노니 하며 설쳐대는 가면쓴 밀정들은 어디에 붙어야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보장 받을지 눈치 살피느라 하루 온종일 바쁘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친일정권 독재정권의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터득한 기민한 촉수로, 나가자니 정모가 미덥지 못하고 눌러 있자니 자신의 본색이 들통날까 두렵고 그렇다고 대놓고 이모후보에게 의탁하자니 대접 받기 어려운 모양새라, 하는 짓이 분탕질에 모함질이다.

정모는 더 한심하다. 차라리 이모처럼 아들에게 심어주지도 못한 애국심을 들먹이며 이 나라의 안보와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철면피함은 백성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의 기준이라도 제시해준다. 정책도 없고 소신도 없이 내뱉는 정치의 변(辯)이란 것이 온통 모순된 것 투성이다. 초당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왜 남의 당 국회의원들 모으지 못해서 안달이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를 한다는 인사가 수구 중에서도 골수들인 자민련에 추파를 던지며 꼴사나운 구애의 몸짓을 하는 지, 기가 찰 노릇이다. 한나라당과도 단일화 논의를 하겠다는 대목에서는 까무러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을씨년스러운 오늘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구한말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라온 것은 아닌지 몇 번씩 의심하곤 한다. 전세계를 자신들의 식탁으로 차려놓고 구미에 맞게 요리하여 낼름낼름 집어 삼키려는 미국의 식탐에 부하뇌동하며, 북한의 전향적이고 개방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불량국가로 낙인 찍지 못해 안절부절인 한나라당과 조선 동아 등의 작태를 보면서는, 당을 끌어들인 반쪽짜리 통일로 우리의 드넓은 영지를 대부분 빼앗기고만 통일의 신라시대, 한 민족이었던 발해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협소한 한반도의 남쪽 귀퉁이에 안주하고 말았던 남북국시대에 내가 와있는 것 같기만 하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수구신문들의 혹세와 수구진골들의 무민, 나아가서는 지역의 갈등을 조장하며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술수에 말려, 무조건 호남이 싫고 김대중이 역겹고 노무현이 미덥지 못하다고, 남북갈등세력 외세의존세력 독재잔존세력들에게 표를 던지는 영남의 정서다. 나는 여지껏 숱한 절망과 한탄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영남인의 정서와 선택에 대하여 서운함과 몰지각을 토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며 할 말은 해야겠다.

신라의 후손들이여! 김춘추의 통일외교가 부른 당의 개입으로 빼앗긴 저 만주벌판의 영지가 진정으로 아쉬운 적이 없는가? 이 좁은 땅덩어리를 동서로 갈라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DJ정권의 부패에 대한 심판인 것인가? 그렇다면 나 같은 충청도 사람은 어디에 빌붙어 살아야 할 것인가? 또한 DJ정권이 혹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영남인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무엇인가? 인사의 차별, 개발의 차별 등 그렇게 한이 맺힌 것이 많다면 박정희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영남정권, 그것도 군부독재정권에서 당했던 호남의 한은 그대들의 억울함만 못하단 말인가?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호남인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대들의 촌동네에서 자란 노무현을 선택하였다. 국민의 정부 오년 동안 호남인이 득세하였다고 다 인정하자. 그것이 근 40년 가까운 영남정권의 득세와 견주어 그리도 큰 혜택이었나? 아니라면 이 땅의 주류는 당연히 영남인의 것이라는 그릇된 오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한나라당의 입후보자들이 전부 다 그렇게 훌륭한 정치인이요 지도자감이던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말이 또 다른 지역감정의 조장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고 더욱 삼가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 들어도 오늘 우리의 정치는 정책과 리더십은 실종 되었고 광기 번뜩이는 지역감정의 망령만이 떠돈다. 여전히 영남의 인구와 경제의 규모는 호남을 훨씬 능가한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화랑의 후예요 역사이래로 수많은 리더들을 배출한 명문의 후손들이라면, 이제 그 명예에 맞는 선택을 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이회창후보나 한나라당의 집권을 멀쩡한 정신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영남인들의 선택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민주당의 부패를 용서할 수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나는 동학의 실패로 양김의 분열로 아직껏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다 죽고픈 염원에서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한 권력의 실체는 반민중적이었거나 반민주적이었거나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하여 백성의 희생을 강요한 거짓 선지자였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권욕을 위하여 친일세력과 결탁하여 민중세력을 철저히 짓밟았다. 박정희의 시대는 암흑의 전제군주정이었으며 전두환의 오공은 탄압의 절대왕정이었다. 노태우의 보통사람의 시대는 철저한 기만정권이었고 김영삼의 문민은 군부독재잔존세력에 휘둘린 껍데기 정권이었으며 김대중의 국민정권은 수구와 타협하여 얻어진 반신불수의 절름발이 정권이었다.

이들 정권의 태생적 한계는 정경유착 인권탄압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생산해낼 수밖에 없었다. 차츰 나아진 듯이 보이는 일련의 절차상의 민주주의들은 오히려 수구독재잔존세력들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불러 왔고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세상의 가을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이야기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은근한 분위기도 감지 된다. 여당의 이모의원은 국민경선에 나서며 그 분위기 덕을 볼려는 심산으로 헤어 스타일 말투까지 흉내내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그렇게 철학이 없고 신념이 없으니 떨어지는 것이고 경선불복의 상표권이 자동적으로 인정되어 그 저작권이 백성들에 의해서 보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억지스런 질문을 해야겠다. 일본의 식민지배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전쟁기지화 되면서 급격한 공업의 발달과 제 산업분야의 선진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니 내선일체 부르짖으며 잘 살면 되는 것을 뭐하러 박해 받으며 독립운동은 했더란 말인가?

친일한 인사들이 바로 이런 논리로 황국신민을 부르짖고 창씨개명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떤가, 하여가나 부르며 등 따습고 편한 세상 자식 잘 먹이며 살면 되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지와 올바른 사유를 부여받은 신성한 개인이며 주체적 자아이기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내가 용인할 수 없는 권력의 지배를 거역하며 싸운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오로지 우리 스스로 진실하고 정의로운 판단에 의지하여 선택한 권력에 의하여 규율될 뿐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에 근거한 통치행위로 한정된다. 그마저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 때만 나의 인격이 제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우리의 신조를 유린하여온 자들이 우리를 지배하여 왔다. 그것은 바로 또 다른 식민의 지배였다. 그래서 나는 이 지긋지긋한 식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끝장내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까지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는 사악한 마법사의 주술에서 이제는 풀려나고 싶은 것이다. 누가 음험한 마법사인가? 이회창인가 아니면 노무현인가?

마법사에 의하여 길러지고 조련된 자가 누구인가? 정몽준인가 아니면 노무현인가? 120년 전, 임오군란으로 촉발된 반외세 반봉건의 울부짖음과 군국일본의 야심에 무참히 깨어진 동학혁명의 꿈이, 바야흐로 2002년 오늘 개혁과 통합이라는 꿈으로 다시 꾸어지고 있다.

한 세기의 역사를 철저히 농락하고 자신들의 정권욕을 위하여 백성을 식민의 노예로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세뇌한 악랄한 마법사의 술법을 물리칠 절체절명의 마지막 기회가 다가왔다. 다시 식민의 백성으로 살아갈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습하는 천추의 한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위대한 저항을 시작할 것인가?

마법과 주술을 깨부수며 위대한 항전의 전위에 설 자 누구인가? 권영길인가 아니면 노무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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