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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가 진단하는 노무현 시대의 칼럼방
[노무현시대 연재 2] 이 회창은 승리할 수 있는가?
[노무현시대 연재 2] 이 회창은 승리할 수 있는가?

(이 글은 10/2 에 회원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이 회창은 'one hundred' 게임에서 이미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서
게임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의문의 여지 없이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이다.

이 회창이 차지하는 기본 사이즈는 역대의 선거의 경험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이 회창은 38.2%을 얻었고,
2000년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39%를 득표했다.
1998년 광역단체장선거에서 한나라당은 40.6%를 득표했다.
그리고 좀더 멀리, 199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전신 신한국당의 김영삼은
41.4%를 득표했다.

많은 정치적 이합집산과 사건들에도 불과하고 현재 이회창으로 대변되는
한국 정치의 제 1세력은 꾸준히 40% 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제 3세력에게 최대한으로 갈 수 있는 20%를 제외한
나머지 80%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이미 당선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대변하는 제 2세력이 비슷하게 나머지 40%를 차지한다면,
선거 결과는 집계를 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
1997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도 결국 제 2세력이
40%를 차지해버린 데 있다.

이 회창이 그러므로 안정적인 당선권에 들려면, 40%에서 2% 정도를 더 득표하면 되므로
이만큼을 위해서 선거운동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선거에서 김영삼은 40%에서 겨우 1.4%를 더 득표했지만 이것으로
이미 승리는 더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고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이 회창 승리의 관건은 그의 안정적인 기반 40%에서 2%가량의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 작은 숫자가 그러나 이 회창에 또는 제 1세력에게는
마치 악마의 주술이 걸려있기라도 한듯이 도달하기 어려운 숫자라는데에 있다.
그리고 이 작은 숫자가 의문의 여지 없는 한국의 주류인 제 1세력이
결코 마음편하게 권력을 승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왜 제 1세력에게 40%의 벽은 뛰어넘기 어려운가?
이것은 역설적으로 40%가 너무나도 쉽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 40%는 제 1세력의 역사적성장과정에서
제 1세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유권자들이 쉽게 줘버리는 숫자이다.
그 유권자들은
이념점으로는 반공을 시대상황과 상관없이 의문없이 받아들이며
정치세력의 성공을 경제개발의 성공과 동일시하며,
경제개발의 최대수혜지역이었던 영남을 기반으로 한다.

이 40%의 유권자와 제 1세력의 연대가 강고하면 강고한만큼
나머지 60%의 유권자는 피해의식을 심화시켜왔고
기회만 된다면 40%를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하고 고립시켜버릴 용의가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얻기 쉬운 40%가 곧 너무나도 얻기 어려운 60%의 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제 1세력의 핵심전략은 나머지 60%의 틈을 찾아내서
일부분이라도 획득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리그를 경원시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리그가 그 리그 밖에 사람들도 뭔가 흥미있어서
구경오고 싶어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말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일부라도 나누어줄때,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지언정, 그것이 전체 이익의
총량을 증가시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돌아갈 것이 있음을
설득하는 것이다.
전자는 정치권력을 60%내의 일정지분이 있는 세력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국가발전전략과 정책을 제시해서 60%안의 일부분이나마 설득하는 것을 뜻한다.
전자의 경우 지분을 대표하는 인적 요소들의 합종연횡을 통해 권력지도를 바꾸어가는 것으로
전쟁의 경우 "지상전"으로 비유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지분을 대표하는 인적 요소들을 뛰어넘어 60%안의
유권자들을 직접 공략한다는 점에서 "공중전"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3자가 연합한 신한국당의 사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적어도 권사독재 이후의 대선들에서 그 명쾌한 사례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전자의 방식이 후자에 비해 그 효과가 직접적이고 손쉬웠었기 때문에
후자는 그다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도 제 1세력은
이합집산이라는 지상전을 통해서 마의 40%를 돌파할 것인가?
그렇지 못하리라는데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데서
한국의 정치지형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지상전은 제 1세력에게도 자신의
지분을 대폭 포기해야하는 골치아픈 과정이다.
고작 몇 퍼센트의 득표를 더 얻는데 반해, 이익은 훨씬 많이 나누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은 김영삼이 김종필을 축출해버린데서,
그리고 이념적 유사성에도 이회창이 김종필을 외면하는데서 잘 알 수 있다.
지상전을 통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면 굳이 그것을 거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제 2세력이 확고한 40%를 확보하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
제 2세력에 대해 항시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급적 독자적으로 승리하고픈 강한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여건이 바로 제 1세력으로 하여금 지상전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전을 "못하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정치지형의 변화가 있다.
그것은 제 1세력이 한국의 주류로서 존재하게 해왔던 존립근거들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명제였던, 반공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그 의미를 상실했으며
배고픈 시대에 꿈을 심어주었던 경제개발은 그 성공만큼이나 그 의의를 잃어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동시에 경제개발의 최대 수혜자였던 영남지역도 이제는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중앙권력에 집요하게 매달려야할 이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찬란한 업적이 점점 추억의 유물이 되어가는 만큼
그 업적을 추앙했던 세대들도 점점 늙어 자연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물적 토대의 변화는 당연하게도 제 1세력과 40%의 유착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제 1세력은 기존의 40%에서 감소될 수 밖에 없는 지지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충원해나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 1세력이 경험하는 정치지형의 변화는
다른 군소세력들도 마찬가지여서
더 이상, 특정한 정치세력이 특정유권자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해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자민련의 몰락이 그 예로,
과거 자민련이 대변했던 유권자들이 더 이상 자민련과
유착해야할 아무런 실제적 동기를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의 변화가
과거 애용되었던 이합집산이라는 지상전의 근거도 허물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이제서야 한국은
봉건시대를 마감하고 확연한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제 공중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할 때 한국의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공중전을 펴나에 따라서
한국의 정치지도가 결정되어질 것이다.
공중전이 한국의 정치세력에게 생소한만큼
과연 어떤 세력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공중전의 일반론에 비추어 각 세력의 처해있는 조건을
비교함으로써 어느정도의 유추는 가능하다.

공중전은 정치세력이 정책을 통해 대중을 흡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은 일부대중을 그 타겟으로 설정해야하며
대중은 정책내용과 정책추진체로서 정책집단을 신뢰함으로써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수립하게 된다.
정책이 일부대중을 타겟으로 설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를 위한 정책은 이미 어느 정치세력이나 써먹는 것으로서
그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책내용이 신뢰받기 위해서는 정책을 구성하는 상세정책들이
모순되지 않고 배치되어야 하며
제반 정책들이 다시 일정한 상위목표하에 조직되는 체계성이
있어야 한다.
그 상위목표의 가장 일반적인 개념이 바로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러한 일반적인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상호모순없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정책체계를
갖추어야만 비로서 공중전의 내용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만으로 공중전은 부족하다.
그러한 내용을 실제 관철시키고 운용할 정책집단
의 인적물적 요소가 정책내용과 조응해야 한다.
인적구성이 그 그 계급적 또는 계층적 성격상 정책내용과 갈등할 수 있다면
또는 인적물적 자원이 정책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대중의 신뢰를 획득할 수 없고
공중전은 그 성과가 불투명해진다.
예컨대,
김대중이 대통령선거에서 내걸었던 검찰독립의 정책은
김대중정부의 낡은 인적구성과 맞지 않았고 결국 집권초기부터
정책을 포기해버렸고,
의약분업정책은 인적물적자원이 감당을 못함으로 인해
그 의도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이회창은 어떤 정책으로 공중전을 전개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라면 이회창은 마의 40%를 넘어서
안정적 당선권에 들어서지만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1,2 퍼센트 승부를 벌여야 한다.

먼저, 한나라당은 어떤 이념을 내걸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제 1세력을 지탱해주었던
반공이념이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공산주의가 이미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실패하면서
일반적인 이념으로서 반공은 당연히 무의미해졌고,
교조적 병영체제인 북한의 존재로 인해
그나마 반공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지만,
그나마 최근 몇년동안의 북한의 개혁 개방조처로 인해
이제 반공은 한반도에서마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다음에 반공이념의 구체적 성과로서
완수했어야할 경제개발마저
그 성공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과거의 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서 마감되어지고 있다.
경제 성공의 의미는 이제 경제의 목표가 정부주도의 개발이 아니라
민간의 자율성이 가져다줄 풍요로운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 상황은 반공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오른쪽 이념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핵심세력인 산업자본 금융자본을 지지했던
제 1세력에게 반공처럼 즉자적이지 않고 보다 세련된 이론적
기반을 갖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로 한데,
그 유력한 후보가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냉전에 의해 가로막혀 제약받았던
자본주의 운동법칙을 완전히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냉전체제하에서 동맹국들의 존립을 위해서는 국가단위의
경제체제를 지켜주어야 했고 그래서 국제적인
자본의 운동도 국가의 안위를 넘어서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해체된 이후 한 국가의 기존적인 생존수단인
국민경제는 그 보호의 필요성이 없어져,
전세계적 자본운동에 휩쓸려버리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국경을
초월해 오직 그 이윤극대화만을 노리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냉전이후 국가가 국민의 기본 생존을 확보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기본원칙도
희미해지면서
자본의 이윤 실현에 대립하는 어떤 계급과 계층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철저히 구현된 것이
1980년대 대처 수상의 영국과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이었다.
양국이 이러한 철저한 신자유주의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각각 세계최고수준의 경쟁력이 있는 금융자본이 영국에 그리고 금융, 산업자본이
미국에 존재했기 때문인다.
이러한 점은 양국에 비해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뒤떨어지는 다른 선진국들에게는 신자유주의가
부분적으로 변용되어서 적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자국내에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나 기업이 있다면
신자유주의를 오롯이 적용하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가능한한 보호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공세를
피하려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또한 자본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급계층에 대해서는
무척 가혹하게 방치해버릴 수 있다.

이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를
그리고 노동자를 위시해 자본운동에 방해되는 세력에게는 신자유주의를
적용하겠지만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이 상충하는 경우는
신자유주의가 비켜가도록 틀어버리고 국내자본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처럼 거대 국내자본과 거대 국내자본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선택적으로 적용되겠지만 그 외에도
개발시대의 유물로서 낮은 인건비로 재생산될 수 밖에 없는 낙후한 그러나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자본들 이 존재하고 있는 점도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틀어지게 하는 다른 요인이 된다.

이처럼 제 1세력이 채택할 수 있는 이념은 신자유주의라 할지라도
한국의 자본구성의 이중적 구조는 그것을 일관되게 적용하기 어렵게 한다.
즉 정책의 일관성의 확보라는 것이 시작부터 어렵게 한다.

나아가 제 1세력이 확보한 40%가 결코 계층 계급적으로 균질하지가
않다는 점은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이 지지기반을 분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한국사회의 반공이념이 반드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해서라기 보다는
북한과의 전쟁 그리고 긴장으로 인해 폭넓게 대중속에서
형성된 것인만큼 신자유주의는 40%의 많은 부분에 적대적일 수 있다.
또한 정부주도 개발시대가 불러온 불투명한 사회구조로 인해 혜택을
입었을 관료층, 전문직종, 자영업자들도 신자유주의의 날카로운 칼날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핵심지지기반인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도 이념과 정책을 수립하는데는 걸림돌이다.
영남이라는 지역은 그안에 무수히 많은 계급과 계층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하고 잡다한 구성을 가진 기존의 40%의 지지층을 여전히
만족시키면서 또한 지지층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이념적 기조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데, 현재 한국의 제 1세력이 갖는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이념과 일관되는 정책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유보하고
한국에서 중요한 몇가지 정책타겟을 정해서 집중하는 것은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는
지역감정 해소, 정치개혁, 남북화해 등인데, 이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안제시를 할 수 있는가?
첫번째는 그 기반이 지역감정과 단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세째는 그 뿌리깊은 반공이념 때문에
한국의 제 1세력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개발시대가 남긴 붙투명성에 익숙해져 있는
인적구성상 정치개혁도 1세력의 정책으로는 그다지 설득력있지 않다.

이처럼 제 1세력이 오랫동안 누렸던 주류로서의 영광은
오히려, 제 1세력이 정책집단으로서 다시 태어남에 있어 질곡으로 작용한다.
이와같은 구조적인 난제들과 동시에 현상적으로 숫적우위에 있는
정치역관계는 제 1세력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변신을 가로막아
몸이 머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낫는다.
그래서 본격적인 공중전에 대한 준비를 함에 소극적이게 한다.
아리러니하게도 제 1세력은 제일 유력하기 때문에
이제 본선에 들어가는 대선국면에서도 자기의 외연을 확대하는 정책수립에
소극적이게 되며
정책공약들은 기존의 40%를 만족시키는데 머무르기 쉽다.

이처럼 정책들을 통한 공중전에 약점이 있는 제 1세력이
그 지지세 확보를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포퓰리스트적인 제스처로 귀결되기 쉽다.
포퓰리스트적인 제스처는
대선후보의 개인적 인기를 높이기 위해 친근감있는 모습으로 포장하고
대국민 접촉을 늘린다던지,
극적 성격을 띤 쇼를 만들어서 국민에게 감성적인 호소를 한다던지,
다소 상충되더라도 각 계층계급에게 별개의 정책공약을 제시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퓰리스트적인 제스처가 이제는 갈수록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무제한으로 확대된 언론은 포퓰리스트적인
정책들의 허위를 공격할 수 있게 하며
싫든 좋든 미디어를 통해 직접 언론과 유권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새로운 선거 상황에서 후보는 쉽게 발가벗겨지고 만다.

또한 제 1세력의 후보인
이회창 후보가 결코 정치적 제스처에 능하지 않다는 점도
후보 개인의 인기로
손쉽게 몇퍼센트 정도의 지지를 늘리겠다는 의도가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현재 제 1세력을 둘러싼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그 집요하리라 예상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지지의 한계 40%를 넘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오히려, 그 노력이라는 것이 결국 기존의 40%를 결속시키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제 1세력은
승리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 1세력이 자력으로 40%밖에 획득할 수 없다면
제 2세력은 얼마든지 노력해볼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80%의 나머지 반인 40%를 차지한다음
결과는 하늘에 맡겨볼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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